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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May 04. 2019

부디 무지개다리에서 나를 기다려줘

사랑하는 나의 동생을 보내며




천사가 되었을 것 같은 내 동생



2019년 4월 27일 토요일

사랑하는 나의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엄마와 누나가 나를 보러 서울로 오는 길이었다. 쭈쭈는 누나의 품에 안겨있었고 기차가 출발하는 동시에 숨을 멈추어버렸다. 누나의 전화를 받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한시라도 그 온기가 가기 전에 동생을 안고 싶었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부산행 티켓을 끊었다. 역으로 가는 동안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실감이 나지 않아서인가 어떻게 서울역까지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차가 출발하고 물 한 모금을 넘겼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내 손은 사진첩으로 향하고 있더라. 사실 2년 전 녀석이 심장비대증을 앓고 기침을 할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인지도 모른다. 매일 약을 먹고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져 가는 게 눈에 보였지만 쭈쭈는 잘 버텼고 내게 늘 똑같은 동생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래서 메모장을 켜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적어갔지만 나는 그것들을 미처 완성시키지 못했다. 눈물은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 터져버렸다. 우는 것을 옆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멈추지 않는 눈물이었기에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가쁜 호흡을 내쉬었다.



사랑


쭈쭈는 16살이었다.

내가 지금 28살이니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에 온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의 생신 선물로 데리고 온 아기 강아지는 내 인생에 한줄기 빛이 되었고 나는 그 녀석과 함께 자라며 어른이 됐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반려견이라는 단어보다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줄곧 썼던 것 같다. 내가 키우는 것보단 함께 살아왔으니 가족이 분명했던 거다. 나에겐 아주 앙칼진 동생이 있었다. 그 동생이 쭈쭈였고 나는 이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쭈쭈도 나를 많이 사랑해주었다. 우리가 한 뽀뽀만 해도 수만 번은 될 테니까.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낸 슬픔의 강도를 가늠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모든 게 다 후회다. 나는 산책도 잘 시켜주지 않았고 맛있는 간식도 잘 사주지 않았다. 내가 부산으로 가면서 애석하게 느낀 점은 쭈쭈가 야위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쭈쭈가 없는 것을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1년 전 나는 아버지를 떠나보냈고 이별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됐다. 그래서인지 녀석의 떠나갈까 봐 미리 조금씩 아파했던 것이다. 후회는 잘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기만했던 나 자신이었고 자그마한 추억이라도 하나 더 만들지 않는 내 나태함이었다. 이별은 냉혹하게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바라보는 눈빛


사랑하는 쭈쭈야. 너는 줄곧 행복했었니. 형은 네가 없었으면 행복하지 못했을 거야. 니 작은 조각조각들이 아직 선명히 기억나는데 이젠 내 가슴에 가장 큰 슬픔으로 자리 남아서 네가 밉기도 하고 더 보고 싶기도 해. 우리 가족은 너를 진심으로 사랑했단다. 다른 사람들은 네가 복이 많은 아이라는데 그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우린 함께여서 좋았고 너보다 내가 더 행복했었으니까. 같이 장난을 치고 귀를 마사지해주고 시답지 않게 뽀뽀를 하며 애정표현을 하는 건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한 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사무치게 그리워만 해야 하는 그림이니 세상이 너무 허무하고 그래. 하지만 나는 무지개다리를 믿는단다. 너는 분명 거기서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을 테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형도 언젠간 이 세상을 떠날 테니까. 


쭈쭈야. 너는 형의 동생이어서 행복했니. 우리 누나는 너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 며칠 전에 누나 꿈에 아빠랑 같이 와줬다며. 누나한테 그 소리를 듣는데 마음이 아프면서도 다행이더라고. 시간 괜찮으면 형한테도 와주라 아빠하고. 형은 여기서 외롭지 않게 지내려고 하고 있지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서 마음 한 구석이 늘 텅 비어있어. 정말 많이 보고 싶은 아빠와 너란다. 그리고 고마웠어. 고맙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게 해 주어서 고마워. 형은 평생 너를 생각하고 그리워할 거야. 그렇지만 무너지지 않고 힘을 내서 살아갈게. 지켜봐주고 응원해줘. 너는 내게 정말 큰 존재니까. 

  

사랑하는 나의 동생


집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심장이 마구 떨려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고 눈을 감고 누워있는 쭈쭈가 누나 품에 안겨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안고 한참을 울었다. 제대로 인사도 못한 것이 슬플 뿐이었다. 해주지 못한 말을 했고 떠나간 그 아이가 가여워 몇 번이고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날 쭈쭈와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장례를 치러주었다. 이제는 정말 떠나보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안녕을 고했다. 마음은 늘 아플 테지만 매일 아파하며 살아갈 순 없으니.


이별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나는 영원한 이별이라는 게 참으로 두려운 사람이 되었다. 어른이 될수록 이별은 숱하게 많아지겠지. 그렇다면 나는 점점 이런 것에 덤덤해질까 아니면 더 아파하게 될까.

장례를 치르고 나서 나는 삼촌에게 말했다.

삼촌, 어른이 되어갈수록 사람은 이런 아픔에 초연 해지는 것 같아.

삼촌은 차분히 내게 말했다. 초연 해지는 건 없다고. 아픈 건 늘 아플 뿐이라고.

맞아. 아픈 건 아픈 것이겠지. 내 동생을 떠나보낸 아픔을 굳이 숨기지 말자. 슬픈 건 슬퍼야 해 마땅하니까. 그리고 늘 기억하고 더 많이 사랑해주자.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네가 있는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편안 해질 테니까. 부디 무지개다리에서 나를 기다려주길 바라. 사랑하는 나의 쭈쭈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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