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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May 01. 2019

서울에서 살아남아 깃발을 꽂자

나 퇴사했다. 서울 온 지 1년 만에




2019년 4월 중순

서울에서 살아남자라는 포부 아래에 나는 정들었던 회사 대표에게 퇴사의 메시지를 던졌다.

1년 동안 불철주야 일하며 성장시켜온 회사를 떠나려고 하니 마음이 맹숭맹숭했지만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각자의 이유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개의치 않고 내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눈물)

사실 이렇게 될지 한 달 전에는 꿈에도 몰랐다. 일이 좋았고 그것만 하고 살았기 때문에 워라벨보다는 워크 밸런스를 원했다. 우선 일이 안정이 돼야지 나도 마음 놓고 쉬는 게 아니겠나. 넘치는 애사심에 워라벨은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련의 상황들은 나의 정신을 깨우기 충분했고 덕분에 나는 서울에서 월세 70만 원을 내고 사는 백수 생활을 하게 됐다.  



퇴사 후 제일 먼저 산 것은 노트북



월세가 70만 원

부산 촌놈 시절에 월세 70은 금수저만 사는 집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이 청춘을 살며 적어도 1년은 폼생폼사로 살아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마인드였다. 그래서 신림역 근처에 옥탑이 있고 퀀사이즈 침대를 놓고도 소파가 들어가고 티브이도 볼 수 있는 넓은 집을 계약했다. 자그마치 월세가 70만 원인 집을. 하지만 그땐 내가 열렬히 일을 하고 있을 때다. 회사는 엄청난 성장을 했고 내 위치도 월급도 그만큼 올라갔다. 하지만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일. 어떠한 이유인지 나는 지금 아무런 소득이 없는 백수신세다. 아니 프리랜서 작가라고 해두자.


앞으로 계약은 10개월이 남았다. 하지만 내가 도망갈 것 같은가? 나는 이를 악물고 서울에 올라온 28살 부산 촌놈이다. 뭐를 해서라도 돈은 벌 수 있다. 나태해지지만 않으면 월세 정도는 벌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그래서 샀다. 나름 8년 차 작가니까. 아수스의 비보북을! 



글로 먹고살자!


그래 내 포부는 그거였다. '작가로서의 성장이 멈추었다. 그러니 글을 쓰고 또 글을 쓰고 움직여서 글로 벌 수 있는 모든 돈을 벌어보자.' 그러기 위해선 성능 좋은 노트북이 필요했고 누나의 구원으로 가성비 좋은 노트북을 살 수 있었다. 여기에 포토샵과 인 디자인과 한글을 설치하자. 그리고 블로그도 다시 만들고 브런치 구독자를 모으고 팔로우를 올리는 거야!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모습. 개인적으로 참 보기 좋다.


그렇다면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나는 먼저 글쓰기 클래스를 모집했다. 8년 동안 글을 쓰며 배운 노하우를 전수해주기 위해서다. 수요일, 토요일 각 각 4명이 모였고 이 분들을 위해 유인물을 만들고 오늘 첫 클래스를 마쳤다. 다행히 모두들 만족해주셨고 앞으로 사력을 다해 글쓰기를 도와드릴 예정이다. 작가로서 말하자면 이렇고 프리랜서라고 말하면 내 밥줄이 되어주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애정하고 충성을 다할 수 밖에.



모닝 산책이 이토록 아름답던가


얼마 전

늦잠을 자고 반바지에 후줄근한 반팔티를 입고 근처 짬뽕집에서 짬뽕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퇴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여유롭고 참 행복하구나.'

이 행복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건 안다. 하지만 28살 지금. 나는 시도를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 잡혀있으니 바지런히 움직여볼 것이다.

 월세 70에 학자금, 핸드폰, 교통비용, 보험비용 낼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일과 글을 병행하며 나는 충분히 잘 살 수 있다. 먹고 싶은 라멘과 가끔은 사시미에 사케까지. 이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내일 죽을지도 모르니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어쩌겠어. 저질렀는데 부딪혀봐야지. 나의 서울에 깃발 꽂기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월세에 맞게 얼른 옥탑에서 맥주 한 캔 마시자.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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