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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Apr 27. 2019

내 잘못이 아니야. 그렇다고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세상에 용서할 수 있는 건 너무나 많다.



잘못을 나열해보자.



 잘잘못을 방바닥에 나열하고 팔짱을 낀 채 한참을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게 없데 말이지라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니었다. 거기서 파- 하고 웃음이 나왔는데 결국 그 누구도 잘 못이 없다는 게 나는 참 허탈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다.


"그래."


 방바닥에 나열했던 다양한 크기의 순간들을 다시 주워 담는다. 그러고 보면 작고 큰 역경을 겪을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좋게 가야 해 라고 소리쳤었다. (물론 속으로 욕도 했지만) 하지만 줄곧 더 나아갔기 때문에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거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생각을 많이 했더니 허기가 진다. 방 한구석에 있는 장거울에 비친 볼록한 배를 바라보니 식욕이 사라졌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내 몸은 짜고 매운 걸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나는 과연 어떤 마인드를 가진 채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어떤 사상을 스스로 확립시키고 어떤 철학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투박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것들은 머리만 아프게 한다고 단정 지으며 내 앞에 놓인 소주를 넘기고 친구 얼굴에 침을 튀기며 웃기 바빴다. 글을 쓴 지 어연 7년째다. 그동안 쓴 것들을 보면 정말이지 내가 놀랄 정도로 많은 글을 쓴 것 같다. 바지런한 것만큼은 스스로 인정해주자.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글들을 쓰며 7년을 버텼던 것일까. 

 찌질하고 능력은 없지만 내가 내뱉은 말을 쭉 살펴보면 항상 보통이 좋고 그 누구도 잘못은 없다는 말 투성이었다. 그야말로 허허실실이다. 돈 좋아하고 짜고 매운 거 좋아하고 욕심 많고 세상을 탓하기 바쁜 나였는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나는 내 글을 내가 보기 위해 쓴다는 것이다. 영화 광복절 특사를 보면 차승원이 이런 말을 한다.


"저는요 제가 빵 먹으려고 빵 장사해요."



저는 빵 먹고 싶어서 빵 장사해요



맞아, 마치 이런 꼴이랄까. 나는 여태 내가 읽으려고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자기 전에 내가 썼던 글을 읽고 수정을 하기도 하고 그때의 내 감정을 이해해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 자신은 몰라도 글에 대한 자존감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내가 좋아해야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테니까.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깊은 생각을 하게 되고 내가 놓쳤던 순간들을 잡아내곤 한다. 영감을 찾아 일상을 되돌아보면 나름의 굴곡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작은 것 하나라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음악을 틀고 나면 차분해진다. 이상하리만큼 완벽하게. 그러곤 무표정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나는 이것은 '초연 상태'라고 부르곤 한다. 어떠한 것에 초연해져 감정을 중립적으로 바라보고 글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과 우리의 잘잘못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저은 것 같다. 28살인 지금 나는 보통의 것들에 행복하자는 마인드고 사상과 철학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으므로 가진 것도 없다. 그래서 매번 실수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철학이 없는 게 잘못은 아니며 이런 사실을 믿고 있는 나는 냉철한 철학과 사상을 가진 당신을 미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제법 심플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울상을 짓고 있는 나는 진정 이 시대의 못난이가 아닐까 싶다.


초연 상태라 하였다.



예전에 실수를 하고 무언 갈 놓치면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변명거리를 찾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어른이 내게 다가와 이런 말을 했다.


"얘,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너도 알면서" 


나는 그렁그렁 눈시울을 붉히며 대답한다.


"맞아요. 제 잘못이 아니에요!"

"그래 그래."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나는 누군가에 말하고 있다.


"그게 무슨 잘못이라고요. 아무렴 괜찮아요."


그리고 내게 또 말한다.


"하영아 네 잘못도 아니야. 그렇지?"



세상에 용서할 수 있는 게 너무나 많다.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내가 아니다. 이해의 범주 안에서 잔잔한 포용력을 가지면 그만큼 마음은 넓어지고 화는 가라앉으며 타인이 밉지 않게 된다. 혹시 너무나 작은 것들에 얼굴을 붉히고 있진 않는지. 불필요한 화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갉아먹기 충분하다. 탓하려면 그 이렇게 된 상황을 탓하자. 상황이 잘 못 되었으니 이런 일이 생겼어. 그러니 우리 무엇이 문제인지 한번 얘기해보자.라고. 막연하지만 서로가 마주 보고 이야기만 나눌 수 있다면 '잘못'이라는 건 수긍과 인정이 되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실수는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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