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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Apr 24. 2019

28살 아들은 아직 장도 잘 못 보네요

부산에서 온 엄마의 김치



근 일 주일 동안 라면 열 봉은 먹은 것 같았다.

한식을 참 좋아하지만 여러 반찬을 차려놓고 밥을 먹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얼마 전 엄마는 내게 김치를 보내주셨다. 사실, 엄마가 보낸 김치 덕분에 라면을 더 먹은 게 아닐까. 편의점에 자주 가지 않기로 하자. 그리고 헬스를 멈추려고 했던 나에게 질타를.


투박한 주방


 자취방 옆에 있는 재래시장에 갔다. 주머니에 현금 2만 원을 챙기고 채소와 육류, 또는 손질되지 않은 물고기를 바라보며 나는 은연중에 먹음직한 요리를 떠올렸다. (사실 모든 가게에서 카드결제가 되는대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현금을 챙긴 나였다.) 

 과유불급이라고. 서툴지만 하고 싶은 요리가 너무 많아 나는 그냥 완성품의 음식을 사서 집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장을 보는 건 다음에 하자. 내가 요리를 해야 할 때 말이야.’ 하면서. 내가 산 음식은 ‘순대 곱창볶음’이었다. 술은 맥주 한 캔만. 어두운 방에 조명을 켜고 노트북 화면을 응시한 채 나무젓가락으로 몇 입을 먹는데 이거 참 맛이 없어서 원. 아주머니는 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넣고는 토치를 이용해 이 요리를 만드셨는데 냉장고에 있는 닭 가슴살이 차라리 낫겠다 싶을 정도의 실력이라 나는 아주 잔잔한 후회를 했다.

 다행인 건 라면은 떠오르지 않았다는 거다. 하지만 나는 냉장고를 열어 내 유일한 반찬인 엄마의 김치를 꺼내 아삭아삭 씹어 먹는다. 엄마의 사랑은 식은 순대 곱창볶음을 맛있는 안주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이거 야밤에 애교를 부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엄마한테 배추김치도 해주고 총각김치도 해주고 국물 김치도 담아 달라 할 거다. 엄마는 “우리 아들~” 하며 재래시장에서 흐뭇하게 채소를 사겠지. 이 못난 아들은 시장에서 아무것도 못 샀는데 엄마. 아직은 엄마가 필요할 나이인가 봐요.


사랑해요 엄마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며 넌지시 김치통을 바라본다. 만약 사랑에 형태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소파에 앉아 내가 김치로 할 수 있는 요리를 메모장에 적어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들어줘야지. 그리고 부산에 내려가면 꼭 엄마한테 맛있는 밥상을 차려줘야지. 내가 만든 건 누구보다 맛있게 먹어주는 우리 엄마니까.

엄마는 이번 주 토요일에 배추김치를 담아 서울로 올라오신다. 우리 엄마랑 간만에 소주 한 잔을 해야겠다. 손도 잡고 맛있는 거도 사줘야지. 서울 신림 근처에 맛집을 아신다면 나에게 좀 알려주세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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