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오늘 충전기 챙기셨나요?

나를 충전시켜주는 아주 자그마한 것들

by 신하영


나를 충전시켜주는 아주 자그마한 것들



'충전기를 깜빡해버렸어. 그러니까 어제 조금만 더 일찍 잤어야 했는데. 솔직히 아침에 알람을 두 개나 무시해버렸어. 다반사이긴 하지만 오늘이 얼마나 길고 긴 날인데.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세상에 충전기를 놔두고 와버린 거 있지. 다행히 80% 정도 배터리가 있지만 노래도 듣고 뉴스도 보고 톡도 하다 보면 금방 줄어들잖아. 어떡하지? 다시 집으로 가? 아니 그러면 진짜 늦어버릴 거야.

아니면 하나 살까? 아니야. 그러기엔 돈이 너무 아깝잖아. 폰 없으면 죽는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된 거 그래, 디지털 디톡스를 해보는 거야. 하늘도 많이 보고 눈감고 미뤄놨던 생각도 좀 하자. 근데 집에 올 땐 어떡하지? 분명 폰이 꺼지고 말 거야. 음악 들어야 하는데'


놓고나온 충전기


충전기가 필요했습니다.

전 폰 없이는 정말 못살거든요. 다른 건 다 챙겼는데 하필 그 중요한 충전기를 안 챙겼는지. 폰을 만지면서도 계속 1%씩 줄어드는 배터리만 쳐다봤어요. 덩달아 나도 힘이 빠지네요. 만약 폰이 꺼진다면 답답할 거예요. 그리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으로 가겠죠.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게 있는데 그건 바로 '나'에 대한 충전기였죠. '폰은 그렇다 치고 나는?' 한편으론 '얘 또 이상한 데서 감성 시작이네.'하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떤 것으로 나를 충전시키는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생각을 해봤죠. 나의 충전기는 무엇인지. 혹시 그것마저 놔두고 온 건 아닌지.


포근한 침대


잠을 푹 자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어디서 힘을 얻고 있을까요. 맛집? 좋은 책? 영화? 아니면 빠른 퇴근? 글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아무렇지 않은 것들에게 위로를 받는 제가 썩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가끔은 하늘을 보고 힘을 얻기도 합니다. 코를 하늘에 맞대고 숨을 들이쉴 때 기분이 정말 좋거든요.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던 곡에 훅 빠졌을 때도 힘이 마구 솟아나요.


하루하루 순간순간 모든 게 재미없고 똑같은 패턴에 넌더리 난다, 벗어나고 싶다고 난리를 피우더니 무심코 들은 음악에 입꼬리를 올리고 먹음직한 핫도그를 먹고 어깨춤을 추고 살며시 불어온 바람에 눈을 감고 햇살이 내리쬐는 밝은 길을 걸으며 괜찮아지는 게 지금 우리의 모습 아닌가 싶어요.

우린 정말 사소한 사람이니까요.


충전기가 없어도.

지금 가진 힘이 있음에도, 일상에서의 당연시되는 욕심을 행하지 못해 서글퍼도 결국 우린 우리 나름대로 충전을 하고 있는 중일 테죠.

오늘 전 충전기를 깜빡해버렸죠. 안 챙긴 게 분명해요. 하지만 가끔은 내 머리가 시킨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이 날 저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친구랑 수다를 떨었고 생각 정리도 실컷 했어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받은 책도 조금 읽었네요. 집에 도착하니 배터리는 20% 정도 남아있었습니다. 전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충전을 바로 하지 않았답니다. 글쎄요. 마음이 넉넉해서랄까요. 필요를 못 느껴서일까요.

그전에 저는 저를 충전했죠. 손발을 씻고 베란다에서 창문을 열고 밤을 느꼈고 어머니가 보내주신 김치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었어요. 유튜브를 보다 세수를 하고 나오니 그제야 침대 위에 있는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죠. 기분 좋게 몸을 던집니다. 그리고 충전기를 연결하고 왔던 톡을 천천히 읽었어요.

사실 그게 다예요.


내가 가득 차게 되니 뭔들 괜찮았어요 정말.


일상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