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하영 Oct 21. 2019

수건의 운명이 나의 운명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젖어가는 것에 대하여



나는 가끔 수건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저기 내 눈앞에 보이는 말끔히 접힌 수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것이 무엇이냐 했을 때 저것을 고를 만큼 새하얗고 가지런히 접혀있는 수건을 바라보며 나는 왠지 서글퍼지는 기분이 들었다. 매일 누군가의 물기를 닦고 축축하게 젖어 빨래 바구니에 뒹구르다 마르지 않은 상태로 세탁을 당하고 다시 멀끔한 상태로 돌아오는 모습이 나와 닮은 것 같아서다.


그러니까, 어딘가에서는 분명 멀끔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건 솔직한 내 모습이 아니기에 점점 괴리감으로 축축이 젖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감정이 쌓이고 심한 우울감에 빠지는 데 그때 우린 다시 일상을 회복하려고 사력을 다한다. 그건 글쓰기의 행위일 수도 있고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음주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일상을 되찾으면 나는 세탁을 당한 것이다. 뜨거운 물로, 강력한 세제로 아주 구석구석 말이다. 그러곤 한 발을 올려 신발을 꽉 눌러신은 뒤 다시 멀끔한 얼굴로 집을 나선다. 더러워질 준비를 하고선.


비관적이다. 하지만 이런 수건의 운명이 나의 운명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태 몇 번의 물질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나를 위해 접어놓은 수건을 보며 괜히 망가트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를 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