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이야기
1945년 겨울 하바롭스크
"잘 지냈어?"
3년 만이었던가. 소년과 소녀는 멋쩍은 얼굴을 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글쎄, 나름 잘 지냈어. 너는 어땠는데."
무심하게 말하는 그의 질문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소녀는 답했다.
"나도 잘 지냈지. 그새 키가 자란 것 같네."
괜히 여유로운 척을 하며 벽에 등을 기대는 그다. 그러니까, 둘은 시베리아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다. 사람이 적은 동네라 가족들과도 거리낌 없이 지낼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는데, 매 계절마다 숲에서 모험놀이를 하고 함께 울타리를 만들기도 하며 평화로운 시절을 보냈다.
1938년. 12살이 되던 해, 그녀의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게 파란 장미를 주며 이렇게 말했더랬다.
"아버지는 조국을 위해서 싸우다 죽은 것이니 너무 상념치 말거라."
그녀는 조국을 위해서 죽음을 받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남기고 간 수많은 책을 읽으며 세상을 배워나갔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이 되리라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는 아버지를 잃은 그녀가 더 이상 모험놀이를 하지 않고 책만 읽어 심술이 났지만, 홀로 남겨진 것이 딱해 늘 주변을 서성이며 불량배나 사건 사고로부터 그녀를 보호했다. 단순한 연민이었지만 며칠 동안 보지 못하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 그다.
시간이 지나며 소녀는 명석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됐다. 아마 동산에서 얘기했던 '운동가'를 하려나보다. 그러던 어느 봄, 소년은 전쟁으로 징병이 되어 홀연히 마을을 떠났다. 엄청난 비밀이지만 소녀는 그 뒤로 책을 읽지 못했다. 아마 떠나간 아버지가 생각나고 또 그런 곳에 그가 끌려갔기 때문일 것이다. 소중한 것을 잃기 싫은 마음은 그녀를 한없이 나약하게 했다.
도대체 전쟁이라는 걸 왜 해서 사람을 이리도 두렵게 하는 걸까. 그녀는 힘을 얻기 위해 책을 읽기보단 펜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 수십 통의 편지를 보냈지만 생사는 알 수 없었고 마음속에 죽음을 인지했을 때 시간은 3년이나 지나가 있었다. 그리고 19살이 되던 해 둘은 하바롭스크 역에서 다시 재회했다.
사실, 잘 지냈냐는 물음에 울음이 터질 뻔 했지만 그것보단 서로가 건강하게 있어주어서 안도를 한 그와 그녀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할 셈인가. 더욱 더 용감해진 그는 아마 그녀의 곁을 평생 지키지 않을까.
재회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