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것이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 내게 납득이 되지 않는 말이 돼버렸다.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요 7~8년 동안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내뱉었던 나는 사실 그 질문에 멈칫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이 뭘까. 사랑이 뭘까.' 답을 말해주지 않으면 실망할 게 분명하니 사랑은 고통과 쾌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벌써 몇 년째 우려먹고 있는 사골 멘트다. 틀린 말은 아니기에 상대방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뭔가 개의치 않은 표정이다. 그러면 나는 역으로 질문한다. "사랑이 뭔가요? 사랑은 뭐라고 생각하셔요?"
그러면 상대방은 입을 뾰족 모으고 눈동자를 올리며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취한다. 그러고 내뱉는 말은 전부 제 각각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고 금방 또 잊을 수 있었다.
만약 이것에 답이 있었다면 당신과 나는 사랑 따위 하지 않고 살았을 게 분명하다. 쉽고 정해져 있는 건 흥미가 없을뿐더러 가치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랑은 불특정 한 사연을 만들어내기에 비로소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정의라고 나는 생각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 가끔은 지겹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이 말은 이미 4년 전부터 해온 말이다.) 하지만 사랑만큼 방대하고 쓰기 좋은 글감은 없었다. 인생이라던가 실패 같은 주제에 대해 글을 써봐도 결국엔 사랑이 종착지였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참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끼곤 한다. 글을 쓸 때는 마치 애정을 구걸하는 사람의 마음이었으니 말이다.
그에게 고통과 쾌락이라고 정의를 내렸지만, 나는 이 주제를 두고 아주 농밀한 대화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치열한 공방을 통해 상대를 납득을 시키고 설득당하는 사이에 굳었던 마음이 빙하처럼 녹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상하지 않기로 한다.
사랑의 종류는 딱 인구의 수만큼이라는 말이 있다. 각자의 경험을 다발을 짓는 건 의미 없는 일이라고. 우리의 사랑은 매일 선택하는 기로에서 달라지기에 모든 사랑의 결은 다르고 서 사또 한 특별할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정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사랑을 고찰하고 나만의 잣대로 하나의 세계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단정해본다. 어느 날 만난 누군가와 세계관이 같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러긴 너무 힘들기에 우리는 그 차이점에서 스파크를 튀기며 새로운 사랑을 깨닫고 신세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집불통 이어도 좋지만 가끔은 점토처럼 무너졌다 다시 모양을 만들어가도 된다. 사랑이 하트 모양이여만 하는 사람은 결국 시시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만들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낯선 무언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항상 되어있다. 그동안 느꼈던 사랑은 초콜릿처럼 달콤한 것이었만 분명 레몬 같은 것들도 있었으니 다른 맛도 슬쩍 기대해보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될지 모르니 먼저 결과를 점치는 것보다 한치도 알 수 없는 감정의 흐름을 감히 기다려본다.
상처 받아도 좋으니. 어쨌든 아플 테니.
달콤한 것이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 내게 납득이 되지 않는 말이 돼버렸다.
이것에 나는 슬퍼해야 할까. 아니면 성숙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언제든 사랑은 내게 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