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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Dec 03. 2020

퇴근하는 길에서 왈칵 울어버렸다.

폐지 줍는 할머니와 한 남자를 보고



퇴근을 하는 길이었다.

골목길에 들어서서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오고 있었다. 길을 비켜 드려야겠다 싶어 길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더 가까워지니 할머니 옆에 한 남자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리어카 속도에 맞춰 발을 맞추고 있었다. 평범한 옷차림에 백팩 끈을 두 손으로 꽉 잡고 고개를 돌려 할머니에게 말을 걸던 남자. 두 명과 교차되어서 지나갈 때 귀를 쫑긋 세우니 이런 말이 들렸다.


"맞아요. 맞아요 할머니."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그는 할머니의 말에 공감을 해주는 듯했다. 할머니는 그 사람에게 이것저것을 얘기하는 듯했는데 목소리가 작으셔서 듣진 못했더랬다.

어쨌든, 몇 발자국 더 가다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거무튀튀한 골목길에 가로등 불이 켜져 있고 박스가 쌓인 수레를 끄는 할머니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차오르는 눈물에 그만 정신을 차렸다. 미쳤지, 살다살다 울게 없어서 이런 거에 눈물을 흘리다니. 

솔직한 마음에선 그 아름다운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마음속에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아 다시 집으로 향했다. 신발을 벗고 옷을 갈아입고 손과 발을 씻으면서도,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자기 전에 누웠을 때도 그들이 생각나 잔잔한 미소가 입에 계속 머금어졌다. 진짜 착한 사람, 진짜 진짜 좋은 모습이었다고 말하면서. 


어디서부터 그들이 만났는지는 모르겠어도 그 남자는 분명 할머니를 도와주려 했을 것이다. 짐작컨대 다시 무언갈 떨어트리지 않으실까 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동행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쉽게도 여기는 북촌





나는 가끔 아무것도 아닌 것에 왈칵 눈물이 난다. 진짜 궁상이 따로 없다. 하지만 메말라가고 있는 마음에 이런 일은 폭포수를 맞는 것처럼 한 순간에 나를 젖게 만든다. 물론, 작가이기 때문에 항상 촉촉한 상태로 지내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마음이 뭉클했던 적은 없었다. 선한 사람과 연약한 사람의 삶의 단면을 볼 때마다 이러는 건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 그런 것일 테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단단해진다더니, 나는 웬걸 점점 말랑말랑 해지는 기분이다. 사회적으로는 출판사를 이끌고 클래스를 운영하는 사람일지 몰라도 신하영이라는 사람의 물질은 연약함 그 자체다. 나였다면 그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그 용기와 선함이 얼마나 내 눈에 멋있었는지 모른다. 


잠에 들기 전에 천장을 보며 다시금 그 장면을 떠올려봤다.

아아, 좋아라. 

그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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