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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Jan 11. 2021

그녀는 우리의 이별을 졸업이라고 말했다.

이별이라는 졸업 후





그녀는 우리의 이별을 졸업이라고 말했다. 

그러곤 내게 이 시기엔 졸업식도 많이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헤어지는 마당에 이런 농담이라니. 나는 푸스스하고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기나긴 2년의 세월, 어찌 보면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잠깐만 돌이켜봐도 수많은 장면이 쓰나미처럼 나를 덮친다. 이튿날. 나는 사진첩을 정리하며 울음은커녕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애틋함에 그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이랬구나.' '그랬었지.' '맞아'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길고 긴 밤이다. 이제 그녀를 마주할 수 없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람이 이제는 세상에서 제일 먼 사람이 되다니. 그 사실에 눈을 질끈 감고 손톱자국이 날만큼 주먹을 쥐었다.

 

정말 사랑에도 졸업이 있는 걸까.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우리의 이별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그러니까, 미성숙한 너와 내가 만나 많은 감정을 느끼고 배운 뒤 한층 더 지혜로워져 비로소 상대를 진정으로 배려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이별이라는 졸업을 하는 게 아닐까 싶었던 거다. 실제로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으니까. 사랑하는데 왜 헤어지냐는 말이 금방이고 떠올랐지만 가끔은 사랑을 해서 겪는 헤어짐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이번 연애에서 알게 되었다. 그래, 이제야 그녀가 말한 뜻을 알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졸업을 한 것이겠지. 퇴학이나 자퇴 같은 이별이 아닌 정말 좋은 이별이었으니까 당신이 졸업이라고 말한 거겠지.


이제는 사진첩 깊숙이 있는 당신 사진을 마주하며 지고 있는 노을을 바라본다. 붐비는 퇴근길. 추운 겨울은 아직 여전하다. 당신은 이 못난 나를 졸업해서 멋진 사랑을 하고 있을지. 갈피는 못 잡는 초년생처럼 나는 아직도 사랑이라는 울타리를 못 벗어나고 있다. 


나 다시 좋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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