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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May 20. 2021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해야만 사랑일까요.

사랑에 대한 고찰








사랑. 사랑을 되뇌면 저는 칠흑 같은 우주가 떠오릅니다. 광활한 어딘가에서 존재할 수 없는 확률로 만나는 것. 두 개의 별이 오랫동안 유영을 하다 부딪쳐 녹색 빛으로 폭발하는 것. 이처럼 인연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큰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인연이 삶에 녹아 융화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리도 많은 상처와 고찰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요? 아주 오래전,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너 그 아이 사랑해?”


친구는 당연하듯 고개를 끄덕였죠.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다르냐고 되물으니 그는 초월이라는 단어까지 쓰며 열심히 사랑을 설명했습니다. 얼마 뒤, 헤어짐에 울상을 짓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저는 사랑은 나에게서 아주 멀리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친구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했거든요.


그동안 사랑한다는 말에 참 무색한 채로 살아온 접니다. 여기서만큼은 제법 진지해지고 싶어 쓰나미처럼 느껴지는 감정이 올 때 그 말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러고 보면 전 친구가 말한 초월이라는 단어를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무뚝뚝했던 건 아닙니다. 분명 여러 방면으로 제 사랑을 표현했으니까요. 단지, 꼭 그 말을 내뱉어야만 사랑이 된다는 사실이 싫었을 뿐입니다. 여러 관계 속에서 남들과 같이 쾌락과 고통을 공평히 맞이하고 느낀 건 다들 각자의 방식이 있다는 것이었지요.

 

30살이 된 지금도 사랑은 제게 미제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버지가 떠나고 느낀 사랑과 희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제게 생긴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명제를 내리는 건 울타리 안에 저를 가두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지 못한 사랑은 아직 억 겹이나 더 많습니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선 오랜 시간과 추억이 필요할 테니 조금 더 두고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사랑이라는 말을 아끼며 삽니다. 이 행동이 훗날 저에게 후회를 안겨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집을 꺾지 않는 건 따라 하는 사랑이 아닌 경험으로 배운 견고한 사랑이 하고 싶기 때문이다. 완벽히 하나의 행성이 될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말이죠.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해야만 사랑일까요. 사랑은 당신을 만나 그 누구도 구현하지 못한 모양을 만들지 않았나요. 저는 그 사실을 믿습니다. 당신의 방식 또한 믿고요. 






<사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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