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고개를 넘어 무리에 도착하기 전 나는 거친 숨을 고르며 몸통에 묻은 털을 떼어냈다.
정말 아련해서 미칠 지경이군.
내 아우가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하면 가차 없이 무리에서 쫓겨날 것이다.
분명 손해가 많은 도박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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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오면 다시 사냥이 시작될 것이다. 동쪽으로 향하지 않아 다행이지만 무리에서 이탈해서까지 녀석을 보러 가기엔 길이 멀어질 것이다.
피비린내가 난다. 습한 바람엔 냉기가 서려 어둠 속에서 살의가 담긴 콧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왔다. 나는 먼저 목이 찢어지는 아우성을 냈다. 피투성이의 피래미 녀석들을 이리저리 살피고 이 초원을 다스리고 온 것처럼 흙먼지를 내며 무리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허나 어느 곳을 봐도 네 녀석의 흔적이 보이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서쪽을 향해 털을 곤두세우고 말았다. 내 오른쪽에는 죽은 초식의 살점들이 나뒹굴고 있었지만 역시나 굶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콧구멍이 벌렁거렸지만 낮은 호흡을 계속 유지해야 뱃가죽이 뼈에 닿아 보이는 걸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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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많은 길을 걸었다.
아직까지 날 두려워하는 것 같지만 내 나름 주홍 눈썹을 내리고 녀석의 표정을 힘껏 따라 했다. 행여나 이빨이 보일까 봐 신나게 웃진 못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실컷 소리 내어 웃었다.
아직도 입안 어딘가에는 네가 준 연두 풀이 끼어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입을 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내 죽는 건 미련이 없지만 한 번이라도 더 녀석을 품에 안고 싶은 마음은 무지 막 하니까.
만약 동쪽에 양 떼가 없다면 머지않아 서쪽으로 빠른 녀석들을 보낼 것이다. 글쎄. 만약 그쪽으로 간다면 내 숨겨놨던 맘모스의 뿔을 꺼내어 선봉을 설 수밖에 없다.
언제든 거짓을 말할 준비는 돼있다. 녀석들을 농락하는 기분은 가히 사냥보다 더 즐겁겠지.
너를 만나 그 찬란한 눈동자를 다시 본다면 난 이곳에서 제일 강한 힘이 생길 것이다.
우리가 함께 도망치는데 쓰게 될 수도 있다.
깊숙한 숲을 안다. 설사 굶어 죽더라도 내 어찌 너를 씹겠느냐.
천지가 울리고 새 무더기가 하늘로 달음박질을 해대면 나는 본능적으로 코를 킁킁거렸다.
탄내와 물 비린내, 구겨진 마른 낙엽, 저 먼 황야의 모래 냄새, 무법자의 발톱, 공포, 살(煞). 이러한 것들이 전부 한 데 뒤섞여 볶인 냄새가 났다.
그의 냄새. 그와 그의 무리들이 단단히 무장한 채 서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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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을 통해 어딘가로부터의 그를 읽어내길 좋아했다. 그렇게나마 그를 붙잡아두려고 한 번 하고 말 일을 두 번, 두 번 하고 말 일을 세 번, 그렇게 코를 좌우로 쉴 새 없이 움찔거렸다.
(이 과정은 굉장히 까다롭고 극진한 섬세함을 요구하는 일이었는데, 나는 평생을 나약한 존재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빠르게 죽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그가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도 전부터 그의 존재를 거대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생존본능이 나로 하여금 그와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빠지게 일조하였다는 것)
그는 주황색 눈썹을 추욱 늘어뜨리거나 이빨이 보이지 않도록 웃음으로 최선을 다해 자신을 죽였다. 그는 자신에게는 당연한 모든 것들이 나를 두렵게 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 또한 그의 모든 것들임을 결코 나는 안다.
나는 오늘도 그를 향한 나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가장한다.
내가 속한 세계는 이런 사랑을 용납하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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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킁. 바람이 분다. 우리는 다리 근육에 순간적으로 힘을 주어 언제든 튀어갈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두려움으로 가장한 모습 이면에는 사실상 다리 근육에 순간적으로 힘을 주어 그에게 튀어가 넓은 품에 안기는 나의 모습이 있다.
오색의 털들이 휘날리면 우뚝 솟은 그의 얼굴이 마치 하늘의 전사처럼 보이기도 하는,
깊숙한 숲을 안다.
숲이 내게 그를 바람에 실어 보내면 나는 깊은 숲 어딘가의 그를 향해 코를 움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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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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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보 작품입니다.
동물 간의 사랑을 적어보고파 제가 제안해보았는데요.
작가님께서 정말 잘 파악해주셨고 또 잘 적어주어서 재밌는 글이 나온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