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소도시 소년

by 신하영







KakaoTalk_20170524_113422270.jpg 시라카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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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전철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날은 저문 상태였다. 보리차가 든 물통을 가방 안에 집어넣고 걸어 밖으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지도를 수도 없이 보아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두리번거리지 않고 8번 출구로 나간 뒤 하늘을 본다. 보라색 하늘이다. 보랏빛은 늘 똑같구나,라고 생각했다. 소년은 모자를 고쳐 쓰고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도보로 한 시간 정도. 아버지가 일하는 곳은 생각보다 소년이 사는 곳과 비슷한 환경에 위치하고 있었다.

도시는 주먹밥처럼 한가운데만 빌딩이 가득하고 그 주변에는 낮은 건물과 산, 논밭이 가득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걸으면서 주먹밥을 먹었다. 소년은 주먹밥과 보리차를 좋아했다. 아버지를 만나면 드릴 주먹밥도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우리 가족은 아니, 아버지와 나는 엄마가 만들어주신 멸치 주먹밥을 가장 좋아하니까.

시계를 보니 8시를 가리킨다. 하늘은 어둑해졌고 공기가 제법 시원해졌다. 내가 사는 동네 와는 다르게 멀찍이서 수많은 네온사인이 자신이 걷는 길을 비춰주는 것 같아 설레는 기분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여행 중이야 라고 여기면 모든지 즐겁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소년은 그 말을 떠올리며 리듬을 타며 걸었다. 얼마 전에 배운 동요도 불렀다. 티브이에서 들은 CF로고 송도 부르고 내 키만큼 자란 초록색 풀을 만지기도 했다.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 소년이 이렇게나 뜰뜬 이유는 아버지의 일터에 어느 한 소녀가 있기 때문이다.

그 소녀의 이름은 사요코라고 한다.


"사요코."


아버지의 친구가 소녀를 불렀을 때 소년은 뒤돌아 아버지의 곁으로 뛰어가는 소녀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이마가 반지르했고 몇 가닥 튀어나온 잔머리가 좋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팔에 매달려 웃는 모습도 예뻤다. 한달에 한 두번. 아버지의 회사로 모험을 떠난다고 생각했지만 2달 전부터는 그 소녀를 보러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회사에 도착하면 아버지와 주먹밥을 하나씩 나눠먹고 사요코 부녀와 함께 저녁을 준비한다. 대게 오리고기를 먹었지만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오늘은 근처 바다에서 각종 해산물을 가져왔다고 했다. 소년은 물컹한 느낌의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무렴 좋았다. 예쁜 소녀를 볼 수 있으니까.

제일 큰 전봇대에 도착을 했으니 앞으로 5분이다. 5분 뒤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빠!"

"오호, 우리 아들 왔구나."

"안녕하세요."

"그래 왔구나. 키라카와 고의 미남."

"안녕."
"응, 안녕."


매번 똑같은 인사를 하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소년은 아버지를 톡톡 불러 주먹밥을 전해주고 멀찍이서 음식을 준비하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밤이 되어 주변이 어두웠지만 그녀를 비추는 전등의 불이 밝아 오히려 더 좋았달까. 흉측하게 생긴 멍게를 보며 표정을 찡그린다. 그 모습을 보고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루키. 이 녀석."


아버지가 주먹밥을 양껏 씹으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였다.


"사요코를 좋아하는구나."

"에?"

"이런 것도 좋지."

"하나도 안 좋아요. 그리고 좋아하지 않아요."

"입은 그렇게 말해도 난 네 아빠다. 속이 훤히 다 보이는 걸."

"그렇지만..."

"이 일이 정리되면 사요코네도 우리 마을로 들어온다더구나. 어때, 좋은 소식이지?"


자연스럽게 입을 벌리고 아버지의 눈을 마주쳤다.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발꿈치가 올라갈 정도였다. 소년은 사요코에 대한 마음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불만이었던 건 단지 1달에 한 두번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마을에는 귀여운 미사와 하나코 같은 애들이 있었지만 사요코는 사요코만의 느낌이 있었다. 그건 정말 특별한 것이라 단지, 엄두를 내지 못할 뿐이야 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저도 모르게 찢어진 입으로 거짓말, 이라고 말해버렸다. 그런 아들이 귀엽다는 듯 볼을 꼬집은 뒤 아버지는 사요코 부자에게 향했다.


"오늘은 근사한 해산물을 먹는 거야. 편식 따위 보여 줄 수 없잖아 하루키."


개불, 멍게, 해삼. 입안에 조금 남은 주먹밥을 야금야금 씹으며 표정을 찡그렸다. 하지만 뚱한 표정으로 저녁을 먹는 것만큼 바보같이 보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


고등어 구이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개불은 괜찮았지만 해삼, 멍게는 그냥 꿀떡 삼키는 걸로 아버지의 시험은 끝이 났다. 소년은 다 먹은 접시를 정리하며 소녀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친구와 사무실을 정리할 때면 온전히 소녀와 같이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도 부끄럼 따위는 없으니까. 멀찍이서 담배냄새가 솔솔 따라오는데 소녀가 코를 막고 역하잖아! 라고 말하는 걸 본 소년은 똑같이 코를 막고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아빠는 다 좋은데 담배냄새 때문에 정말 싫어."


소녀가 맹맹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절대 피지 않을 거야. 절대."

"어른이 되면 모를 일이야. 하루키."

"아냐. 장담해."

"그럼 내기해. 네가 담배를 피우면 나한테 자동차를 사줘 대신 피우지 않으면 내가 시계를 사줄게."

"자동차랑 시계? 너무 불공평하잖아."

"다 하루키 건강을 위해서야."


새침데기처럼 말하고 뒤돌아서는 소녀의 모습을 보며 자동차쯤이야 라고 생각했다. 소년은 바닥에서 뾰족한 돌을 주워 풀숲으로 하나 둘 던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차가 펑크가 나지 않게 바닥을 정리해주는 것이었다. 소녀도 곧장 소년을 따라 하며 아버지를 위했다. 집에 가기 위해서 자동차는 정말 중요한 것이니까.


"근데 우리 동네에선 자동차는 필요 없어. 자전거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소년은 곧 이사올 소녀에게 반가운 인사를 하는 이웃처럼 말했다.


"그래도 자동차가 편해. 근데 하루키. 거긴 어때?"

"조용해."

"단지?"

"응. 소도시니까."

"재미없어."

"맞아. 저녁이 되면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해."

"그런 곳에서 지내야 한다니. 편의점은 많아?"

"응, 아니."

"레비츄는(각종 액세서리와 재밌는 물건을 파는 상점)?"

"시내 나가면 딱 하나 있어. 근데 내가 알려줄게. 사실 도시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 더 재밌을지도 몰라."


소녀가 의심 어린 눈빛을 보내자 소년은 두 손을 번쩍 들며 말을 이었다.


"장담할게. 그러니까 얼른 와."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볼을 긁적이며 서둘러 손에 있는 돌을 던졌다.

사실은 이걸로 된 것이다.

소년은 지금은 세상 그 누구보다 기뻤다. 좋아하는 사요코와 한동네에 살 수 있다는 것에.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사요코와 인사를 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하얀 손바닥. 그리고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 남은 보리차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혀에서 진한 고소함이 느껴졌다.













p.s

소도시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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