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마야

by 신하영










도저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24살이나 먹은 남자가 지하철이든 횡단보도든 엘리베이터에서 훌쩍이고 있으니 오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런데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마야가 죽었다.

내 사랑스러운 마야가 죽고 말았다.

나는 슬픔을 가눌 수 없었다.

마야는 크림 색 털에 크리스털 모양의 눈을 가진 말끔한 샴이었다. 처음 내 품에 안겼을 때 아기 마야는 내 손등을 핥으며 잠에 빠져들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항상 품에 안고 잠을 재우려 했다. 마야는 위험한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높은 곳도 올라가지 않았고 놀라는 일이 있으면 내 품으로 폴짝 뛰어 들어왔다. 그런 모습이 마치 여자 아이같이 같다며 다들 미소를 짓곤했다.

계란으로 만든 음식과 잘게 간 바나나와 우유를 좋아했다. 12월에 태어나서 그런지 마야에게는 겨울이 참 잘 어울렸다. 마야를 품에 안고 핫초코를 마시며 창문을 열어 눈을 맞이 할 때면 -야옹 하며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 듯했다. 툭 하면 토라지는 성격이었다. 불러도 오지 않아 직접 데리러 가면 뒤돌아있는 모습이 마돈나를 닮았었다. 음악을 좋아해서 내가 기타를 치면 항상 옆에서 자신의 털을 핥았다. 그리고 마야는 키스를 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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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은 노쇠였다. 내가 일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만 해도 마야의 목소리엔 온기가 담겨있었다. 물을 마시고 가슴에 마야를 품은 뒤 꼬리를 만져주는데 점차 몸에 힘이 빠지면서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렇게 마야는 죽었다. 다음 날도 출근을 해야 했다. 신발을 신으며 유독 밝은 목소리로 "갔다 올게."라고 말하고 밖으로 나와 신발끈을 묶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울면서 역까지 걸어갔고, 울면서 지하철을 탔으며, 울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은 늘 그렇듯 혼잡했다. 노래를 듣는 여학생, 작은 책을 읽고 있는 아주머니, 나와 같은 직장인들이 계속 훌쩍이는 나를 거리낌 없이 힐금거렸다.

"여기 앉으세요."

한 소녀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20살쯤 되었을까, 하얀 스커트에 하늘색 니트를 입은 아주 어여쁜 소녀였다.

"괜찮아요."

"아니에요. 벌써 일어났으니 앉으세요."

"고마워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그 자리에 앉았다. 소녀는 내 앞에 서서 눈매가 빨개진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눈빛이 밝았다. 그 눈빛에 에워싸인 나는 왠지 꼼짝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나도 모르게 울음을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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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린 역에서 소녀도 내렸다. 내가 바꿔 탄 전철에 소녀도 탔다. 내가 내릴 때까지 내내 함께였다. '왜 울어요?' '괜찮아요?'라고 한 번도 묻기 않았지만 소녀는 줄곧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에서 알게 모르게 나를 지켜주었다. 나는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었다.

"커피 사드릴게요."

전철에서 내린 나는 소녀에게 말했다.

12월의 거리는 사람들이 바삐 오가고, 다행이 춥지 않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온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캐럴 소리가 귀를 간질 었다. 찻집으로 들어서자 소녀는 가방을 투박하게 내려놓곤 메뉴판을 바라봤다.

"아직 아침 안 먹었는데, 오므라이스 주문해도 돼요?"

내가 그러라고 대답하자, 기쁜 듯이 싱긋 웃었다.

잠시 자리를 떠나 핸드폰으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겨울 감기가 심하게 걸려 오늘 하루 연차를 쓰겠다고 굽신거리며 말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내가 테이블로 돌아오자 소녀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도 안 갈래요. 종일 같이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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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에서 나온 우리는 멀리서 나마 바다가 보고 싶어 언덕길을 올라갔다. 사실 소녀가 언덕길을 올라가면 좋은 곳이 있다고 해서였다.

"여기."
그녀가 가리킨 곳은 수영장이었다.

"무슨 소리야. 이렇게나 추운데."

"온수라서 괜찮아요."

"수영복도 없잖아."

"빌리면 되죠."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수영을 못한다.

"혼자 해. 못해 난."

"수영할 줄 몰라요?"

소녀가 이상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물어, 자존심이 상한 나는 잠자코 지갑에서 5천 원을 꺼내 입장권을 사고 말았다. 12월에, 그것도 이른 아침부터 수영장에 들어가는 괴짜는 우리 밖에 없었다. 덕분에 풀을 둘이서 모두 차지했다. 소녀는 활기차게 준비운동을 하더니 유연한 동작을 선보이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인어처럼 물살을 갈랐다. 특유의 수영장 냄새와 울려 퍼지는 물방울 소리가 한없이 푸근했다. 이렇게 수영장에 온 게 몇 년 만일까.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가자 나도 모르게 어깨가 툭, 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물속의 내 모습이 어른어른 흔들려 보였다.

소녀가 갑자기 나를 쑥 잡아당겼다. 나는 첨벙거렸지만 이내 쭉쭉 앞으로 헤엄쳐 나아갔다. 발을 동동 구르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그만 숨이 차 다리를 세워 고개를 들었더니 풀 한가운데였다. 2미터 정도 앞서선 소녀가 내 얼굴을 보며 푸스스 미소 지었다. 나는 따뜻해진 몸의 온기를 느끼며 수영이란 좋은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소녀와 나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수영을 했다.

"그만 나갈까요."

소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나온 우리는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걸었다. 수영을 한 후의 나른함이 너무나 상쾌했고 우유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고요한 주택가가 나왔다. 역 앞의 시끌벅적함이 거짓말 같았다. 내 옆에서 걷는 키가 작은 소녀의 단정한 생김새에 나는 그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맑은 하늘의 겨울 공기에서 따뜻한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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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전철을 타고 시내로 갔다. 이번에는 내가 좋은 곳을 가르쳐줄 차례였다. 역에서 15분 정도쯤 걸어가자 조그만 미술관이 나왔다. 유명하진 않지만 아담하고 좋은 예술 작품이 있는 미술관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탈리아 조각가의 작품과 러시아의 오래된 풍경화도 보았다.

"이거, 정말 예쁜데요."

소녀가 그렇게 말한 그림은 백록과 들판을 모티브로 한 희뿌연 풍경화였다.

"이 사람의 러시아는 늘 겨울이었던 것 같네요."

"낭만주의자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소녀는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우리는 미술관에서 나와 소극장에 연극을 보러 갔다. 우연히 극장을 지나가는데 소녀가 뮤지컬이나 연극을 좋아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의자에 앉은 뒤로 나는 점점 우울해지고 말았다. 1장 첫 막을 알리는 배우가 나와 제일 먼저 했던 게 서투른 기타 연주였기 때문이다.

마야는 내 부족한 기타 연주를 좋아했다. 술을 진탕 마시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기타 연주를 해도 마야는 졸린 눈을 비비며 내 옆에서 동그랗게 몸을 말아 눈을 감고 있었다. 마야가 죽어서 너무 슬퍼 숨도 쉴 수 없을 정도였는데, 낯선 여자와 커피를 마시고 수영을 하고 산책을 하고 미술관에 가고 연극까지 보다니,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소녀는 간혹 연극을 보다 재밌다는 듯 까르르 웃었지만 나는 끝내 한 번도 웃지 못했다. 웃기는 커녕 점점 마음이 무거워져, 연극이 끝나고 큰길로 걸어나왔을 때 이미 마음에 슬픔이 가득했다.

마야는 이제 없다.

마야가 없다.

길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흐르고, 일찌감치 달이 해를 밀어내어 파르스름한 저녁 하늘이 도시의 네온사인을 더욱 빛나게 해 주고 있었다.

"올해도 다 갔네요."

소녀가 말했다.

"그러게."

"내년은 또 새로운 해죠."

"그래."
"나, 지금까지 즐거웠어요."

"그래, 나도."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자, 소녀가 내 턱을 잡고 살짝 들어 올렸다.

"지금까지 줄곧, 이라고요."
낯익은 크리스털 모양의 눈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소녀는 발을 조금 들어 내게 키스를 했다.

내가 그렇게 놀란 것은, 그녀가 키스를 해서가 아니라 그 키스가 마야의 키스를 너무도 닮아서였다. 얼이 빠져 멍한 채 말도 못 하는 내게 소녀가 말했다.

"나도 아주 많이 사랑했어요."

쓸쓸하게 웃는 얼굴이 너무나 예뻤다.

"이 말을 하러 왔어요. 그럼, 안녕. 행복해야 해요."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 파란 불이 깜빡이는 횡단보도로 휙 뛰어가 버리고 말았다. 하얀 그 모습은 마치 마돈나를 닮아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하염없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었다.

마야가 떠난 지 하루. 그렇게 밤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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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차가운 밤에- 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가장 좋아하는 편입니다.

첫 17페이지까지 읽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온 이야기가 바로 '마야'의 전체적인 이야기 입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필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상황, 여주인공을 남자로 개를 고양이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저는 이런 글을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짧고 아주 굵은 소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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