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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준열 Jan 13. 2024

나를 변화시킨 건 단 한순간, 아버지의 진심이었다

결국, 사랑이었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나는 공부도 꽤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그런 학생이었다.

밝고 쾌활하고 뭐든 적극적으로 임하는 학생이었으니 선생님들도 나를 좋아해 줬고 주위에 친구들도 많았다. 부모님께서는 여기저기 나를 자랑하면서 다니셨다.  나는 그 시절 매우 행복했다. 학교, 학업, 교우관계, 부모와의 관계 등 모든 것이 다 완벽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내 성적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좋아하는 친구들과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것에 꽤나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이젠 놀기만 잘하는 학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점점 꿈도 목표도 없는 텅 빈 깡통처럼 변해갔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속상해했던 분은 당연히 부모님이셨다. 형제들 중 부모님과 제일 잘 지냈고 모범생이었던 둘째 아들이 갑자기 이상하게 변해버렸으니.. 많이 당황하셨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못된 짓을 하고 돌아다녔거나 흔히 말해 날라리가 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공부가 하기 싫었을 뿐이었다. 대학 진학에 대한 생각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얼마나 지켜보기 힘드셨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보다 못해 부모님은 떨어지는 성적을 만회시켜 보고자 당시 좀 유명했던 소수 그룹과외 학원에 나를 보내셨다. 나는 과연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했을까? (당시 고3 여름쯤이었던 것 같다)


물론 아니다. ㅠ.ㅠ

역시 나는 그 안에서 또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과 놀기 시작했다. 심지어 새벽까지 친구들과 놀고 있으면서 부모님께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새벽 2시쯤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 집에 들어갔는데 평소와 다른 것은 거실에 불이 켜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한 짓이 있었기에 엄청 긴장을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웬걸?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 책을 보시고 있는게 아닌가. 나는 당황하면서 말을 걸었다.


"아빠, 어쩐 일이세요? 주무시지 않고...."

어, 왔구나, 오늘도 고생 많았다. 요즘 많이 힘들지?

네가 새벽까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아빠가 어떻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겠니.. 나도 뭐라도 해 보려고 한다. 책을 읽든지.. 그냥 아빠도 겸사겸사 책을 읽고 싶기도 하니까.


뜻밖의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다음날 학교에서도 멍하니 계속 생각만 했다. 학교를 마치고 과외학원에 갔을 때 나는 여느 때와는 달리 혼자 있고 싶었다. 계속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녁 9시쯤이었나.... 나는 갑자기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혼자서 정말 펑펑 울었던 것 같다. 당시 어떤 가게 옆 구석진 곳에 앉아있었는데....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왜 그렇게 울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마도 부모님을 속이고 있었던 자신의 잘못, 양심의 가책, 나도 알 수 없었던 내 안의 변화들, 답답함...... 이 모든 게 한꺼번에 몰려왔던 것 같다. 나는 몇 시간을 그렇게 아이처럼 울었다.



나는 바로 다음날부터 달라졌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진심으로 열심히 했다. 심지어 내 주변에 함께 놀던 친구들도 다 정리했다. 좀 과격한 방법이긴 했지만 아무튼 나는 그동안의 나와 작별을 고하고 싶었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물론 각성도 늦었고 재수를 했지만 난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입시 준비를 했다. 비록 sky 대학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졸업을 하고 무난히 좋은 직장에도 입사할 수 있었다.


나는 가끔 생각 한다. 그날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각성하지 않았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물론 나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방치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이 되어 있긴 하겠지. 하지만 그 과정은 보다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 목표도 없이, 생각도 없이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던 나를 180도 변하게 했던 것은 선생님의 충격요법도, 무서운 훈계도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끝까지 믿어주었던 아버지의 말과 행동이었다.
무엇을 어찌할 줄 몰라 할 수 있는 것이 그저 아들을 기다려주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진심이었다.  




 그때의 내 아버지처럼 아이들을 끝까지 믿어줄 수 있을까.... 학비와 학원비를 대주고 용돈을 주는 게 아버지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연 나는 내 아이들에게 진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오늘도 아들과 둘이 차를 타고 가면서 할 수 있는 말은 "요즘 학교생활은 어떠니?" 이 말 뿐이었다.

내가 말하면서도 뭔가 투박함을 느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잔소리가 될까 봐 스스로 대화를 오래 끌지 못했다.


 자식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잔소리가 되어가는 듯하여 마음이 좀 그렇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까 고민 중이다. 중요한 건 꼭 내가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조언을 해 줘야 한다는 것이 나의 강박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대화는 들어주는 것도 대화고 함께 무엇인가를 하는 것도 대화다. 무언가 아이들을 위한 행동도 대화다.


오늘은 아버지가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으며 나를 기다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 또한 내가 느꼈던 아버지만의 대화방식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냥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나온 것이리라. 새벽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떤 어른의 조언 보다, 어떤 경험을 듣는 것보다 내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나에게는 100마디 멋진 말 보다 투박했지만 아버지의 진심을 느꼈던 것이 더 중요했다.


내 아이들도 마찬가지일까


나도 내 진심이 행동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이 되리라 생각해 본다.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이 어머니와 같이 자연스럽진 않았지만 그냥 느낄 수 있었던 아버지의 진심처럼 말이다.


결국, 사랑이었다.


사진: UnsplashRobert Ekl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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