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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봄 Nov 07. 2023

내향인의 모임 예찬론

좋아하는 그 하나랑

어떻게 사람이 스펀지 같냐!

자기야! 그렇게 살면 안 힘들어?


전자는 대학 시절 친한 친구에게, 후자는 직장 선배에게 들은 말이다. 친구는 넌 상대방이 누구이건 상관없이 흡수하는 사람 같다며, 직장 선배는 어쩜 그렇게 싫거나 힘든 내색 없이 항상 사람들을 웃으며 대하냐며 다소 신기한 듯 물었었다. 애써 노력하며 사람을 대한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던 그 질문들은 지금도 기억날 만큼 낯선 것들이었다. 어쨌든 두 질문의 시간차가 있는 걸 생각하면 이런 모습이 어느 한순간 잠깐 왔다가 간 것은 아니고 성격이었던 것이다. 여럿 틈에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고 나가는 재주는 비록 없었으나 다행히 공감 능력에 바탕을 둔 박수, 웃음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에 이들이 적절히 섞여 사람들 사이에서 E성향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사람 좋다’는 말을 듣는 여느 관계지향형 사람들처럼 주변에 사람이 득시글득시글해야 하나 전혀 그렇지 못하다. 누군가에게 만나자고 하기는커녕 안부 문자 하나 보내는 것도 고민만 백만 번 하다 결국 못 보내는 스타일이라 예전 직장 동료들과는 거의 연락 두절 상태이며(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곁에 있어준 지인들이 갑자기 무척이나 보고 싶다), 누가 만나자고 해도 대 여섯 번 중 한 번은 별의별 핑계를 대며 피하기 일쑤고, 단체 채팅방에 말 하나 남기는 것도 큰 결심이 필요하다. 간혹 이런 성격을 극복해 보고자 고심 끝에 겨우 글 하나를 남기기도 하나 무플이 두려워 휴대폰은 들여다보지도 못한다.


여기서 안타까운 지점이 하나 있다. 관계‘지양’ 형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염치없이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는 또 궁금하다는 것이다. 이야기 나누며 20대의 나처럼 박장대소도 하고 싶고 30대의 나처럼 일말의 애씀도 없이 따스하게 웃어주고도 싶다는 것. 그럼 어떻게든 찾아 나서야 한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닐 수 있는 모임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단, 고려해야 할 중대한 사항이 있다. 예상한 만큼의 에너지와 시간만 쓰고 싶다는 것! 그렇게 나의 고독을 고립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모임을 찾아 온라인 세계로 들어갔다.


이 모임 저 모임 많이도 기웃거렸다. 발 담근 모임으로 말하자면 미니멀리스트  모임, 가계부 쓰기 모임, 육아 모임, 새벽 공부 모임, 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 등. 소심한 사람의 특성을 십분 발휘하여 아무도 주지 않는 괜한 소외감을 혼자 느껴도 보고, 밑바닥에 깔린 질투심과 열등감에 팔로우 신청과 취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기도 하며 친구 찾아 헤매기를 어언 3년.  ‘그래, 온라인 속 친구들이 무슨 의미람’이라며 지친 나를 다독일 무렵 책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필사 프로젝트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오호라! 책도 읽고, 필사도 하고! 꿩 먹고 알 먹고!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었기에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따라 쓰는 것은 꽤나 멋져 보였다. 순간 뱃속에서 꿈틀거림이 일었다(나는 평소 설레는 것을 만나면 진짜 화장실이 가고 싶은 이상한 야릇한 느낌을 갖는다). 다행히 약간의 무모함도 겸비했기에 일단 신청서를 덜커덕 제출했다.


그런데 아뿔싸! 프로젝트 시작에 앞서 온라인 대면 모임이라니. 대략 난감이다. 안 그래도 관계‘지양’ 형 인간인데, 거기다가 화장도 안 하고, 머리도 질끈 묵고 있을 그 시간에 대면이라니. 거기다가 남편도 옆에 있을 시간이라니. 일이 있다고 할까, 아이 핑계를 대 볼까 라며 그럴싸한 핑계를 찾는 와중에 날은 저물어 약속 시간은 다가오고 그렇게 컴퓨터 앞에 앉고 만다. 깊은 밤에 얼굴을 비추고 만난 온라인 친구들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책과 필사라는 관심사로 모여서인지 온라인 공간은 차분했고, 서로의 나눔은 따뜻했다. 지금까지 꾹꾹 눌린 채로 말하여지지 못했던 나만의 이야기가, 깨어나지 못했던 나만의 생각이 쓰이도록 도왔다. 그동안 퇴근한 남편을, 동네 엄마들을, 어쩌다 한 번 만나는 사랑스러운 친구들을 붙들고 “있잖아, 얼마 전에 OOO라는 책을 읽었는데 말이야' 라고 대뜸 이야기할 수 없었으니 많이도 참았던 것이다. 브런치 작가도 애정하는 온라인 친구가 언제인가 글쓰기를 꼭 해보라고 건네준 그 말이 고마워 잊지 않고 마음 한 구석에 저장해 두었다가 도전하게 되었다. 급기야 탄력 받은 용기는 매 번 온라인 대면으로 소통해야만 하는 독서토론으로까지 이어졌다.


물론, 나는 아직 쑥스럽다. 왁자지껄한 단체채팅방에 글 하나 남기질 못하고 주저한다. 친구들이 남겨놓은 별별 얘기들은 꼼꼼히 챙겨 읽고 혼자 손뼉 치며 웃기도 한참을 웃고, 눈물도 흘린다. 나의 이중생활을 친구들은 꿈에도 모를 일이다. 상관없다. 혼자 박수를 치고 웃으며 아낀 에너지를 혼자만의 시간에 마음껏 쓰는 내향인의 기쁨을 친구들이 이해할 리 없다. 이해받지 않아도 상관없고 말이다.


책이라는 매혹적인 연결고리가 아니었다면 대면의 쑥스러움을, 채팅방에 글 쓰기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단연코, 아니다. 이제 ‘좋아하는 거’ 하나를 찾으면 그것을 매개로 ‘여럿’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우리도 얼마든지 I70정도의 성향을 지닌 채로 E30을 누리며 오롯이 나로, 또 함께로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좋아하는 그 하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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