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왜 다녀?

공부하는 어른이 되어 아이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

by 심원장

주말 식사 시간에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다시 학생이 되었다고. 길게 걸릴 공부를 시작했다고, 그래서 가족의 양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편은 처음 결정할 때부터 알고 있었고 이번에는 아들과 살림을 도와주시는 친정 부모님께 말씀드린 것이었다. 아들이 이제 중2라 예전만큼 손이 많이 가는 건 아니지만 원래는 학습적으로 내가 많이 챙기는 편이다. 그래서 나도 공부해야 해서 바쁠 거라고, 학교 활동도 예전처럼 다 챙기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들은 아마 속으로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을 하고 조금 있다가 아들이 물었다. “학교 왜 다녀?” 순간 화가 올라왔다. “다니기 싫으면 다니지 마.”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아니, 엄마 학교 왜 다니냐고.” 그제야 말했다. “대학원 가려고. 공부가 재미있어.”


중2 외동아들. 새 핸드폰 사달라고 조르는 사춘기 아들. 그래도 시키는 건 하는 착한 아들이다. 그 아들의 질문 때문에 나는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왜 학교에 다니고 있을까.


이번 주가 첫 수업 주였다. 첫날부터 교수님이 설문 겸 퀴즈를 보신다고 했다. 문제를 보는데 분명 중등 과정이다. 그런데 기억이 안 난다. 이거 상위 개념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세고 있다. 옆 사람들은 슥슥 풀어 나간다. 벌써 제출하는 사람도 있다. 답지를 제출하고 나서야 문제를 잘못 봤다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 아이들 마음이 느껴졌다. 시험을 볼 때, 문제를 풀다가 막힐 때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싶었다.


법적으로 A는 10%라고 한다. 39명 수강생 중 3등 안에 들어야 한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다들 고3 수업까지 하는 베테랑 선생님들처럼 보인다.


주말에 복습을 했다. 과제를 한다. 몇십 분 걸려 푼 문제가 정답이 아니다. 또 푼다. 또 아니다. 또 푼다. 또 아니다. 될 것 같은데 왜 안 되지. 답답해서 AI에게 물어본다. AI는 바로 푼다.


울고 싶다.


내신 대비 시스템도 가동해야 한다.


울고 싶다.


학교에 왜 갔을까.


그럼에도 수학이 재미있다. 그래서 내가 수학학원 선생을 하고 있나 보다. 울면서도 계속 풀게 되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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