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하기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오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산책을 나섰다. 거실에서 바라본 창밖의 하늘이 맑고 싱싱해 보였기 때문이다. 집 밖을 나서 중랑천 산책로에 들어서니 멀리 북한산 멧부리 백운대를 가운데로 만경대, 인수봉이 보인다. 두물머리 중랑천 산책로에서 수락산 방향으로 잡았다.
봄은 이미 지상 곳곳에 내려왔다. ‘봄’은 볼 것이 많아 ‘보다’의 명사형인가 보다. 지천으로 피는 꽃들의 향연이 지나는 산책인들을 위한 공연 준비에 한창이다. 녹천교를 지나면서 개나리꽃이 만개하려고 리허설 중인 모습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핸드폰으로 개나리꽃이 화면 꽉 차게도 찍어 보고 아웃포커싱으로 담기도 했다.
노란 개나리는 멀리서도 사람의 눈길을 잡아 끈다. 길가에 핀 개나리꽃을 보면서 걷는 나의 걸음걸이를 누군가 본다면 들떠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개나리가 꽃을 피웠으니 다른 꽃들도 앞다퉈 피기 시작하겠다. 꽃들의 시샘은 인간들의 질투보다 치열하다. 개나리꽃을 시샘하여 하얀 벚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벚꽃나무도 보인다. 분홍빛 벚꽃은 가지마다 꽃망울이 맺혀있다. 맑은 태양빛을 며칠만 받으면 벚꽃도 중랑천에서 볼 수 있으리라.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나처럼 나이 든 남자에게도 꽃처럼 입이 벌어지는 계절이다. 활짝 핀 꽃을 보면서 어찌 인상을 찌푸릴 수가 있단 말인가. 입을 가만히 다물지 못하고 연신 바보 같은 미소만 지어진다. 꽃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난 무죄다.
산책로 한쪽에선 잡초제거에 한창인 공공 근로 여성분들이 보인다. 봄을 위한 행진에 나설 나무들이 잡초에 영양분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봄맞이 준비는 인간의 손길을 거쳐야 하는 꽃나무도 있는 법이다. 공생하기 위한 서로의 보살핌과 보답으로 봄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봄이라는 계절이 마냥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일명 보릿고개를 생각한다면 막무가내로 좋아만 할 수 없는 계절이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시절을 살아온 세대가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다. 그 시절의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신 분들이 지금은 꼰대라고 불리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또한 자연의 순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개구리들이 올챙이 적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지구 상 동식물은 그렇게 자연의 법칙을 따라 생존하기에 후세들이 선배들의 노고쯤 가볍게 생각해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고요하게 들숨과 날숨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먹을 것 부족한 보릿고개 시대가 다시 오지 않겠지만 요즈음 들어 마음의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고 있는 사람들도 이 땅에 존재한다. 코로나 확진으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남은 가족, 백신 접종의 이상반응으로 순간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마음의 보릿고개를 넘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일 것이다. 이들에게 온정 어린 관심이 늘어나고 적절한 정부 대책이 마련되길 희망한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회색빛으로 죽은 듯 고요히 잠들어 있던 풀들은 봄의 햇살의 온기를 받아 초록빛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겨울 모진 추위 속에서 죽은 줄 알았던 나무는 기어코 꽃을 피우고, 풀뿌리는 초록 새싹을 키워내고 있다.
연약한 식물들도 고통을 참고 이겨내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견디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첫걸음은 위태롭지만 계속 걷다 보면 산 정상을 밟고 설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위하여 난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