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피 쌈 하루
아침에 퇴근해서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거실에 아이스박스가 보였다. 무엇이 들어있는 박스인가 살펴보니 곰피였다. 곰피가 무엇인가 검색창에 단어를 적었다.
곰피는 갈조식물 다시마목 미역과의 다년생 해조. 한국 동해안의 특산물로 무기질을 풍부히 함유하고 있으며 약간 떫은맛이 인기가 좋아 쌈이나 무침 등에 많이 사용된다. 무기질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으며 추출물은 구강청결제나 화장품으로도 이용되며 최근에는 노화억제 물질이 발견되었다. #두산백과
최근에 발견한 노화억제 물질이 들어있다니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반기는 식재료구나. 나에게도 해당됨은 물론이다. 사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해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몸에 좋다는 먹을거리는 찾아다니면서 먹지는 않더라도 찾을 수 있는 것은 먹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아내가 발견하고 구입했을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생곰피는 황토색을 띤다. 뜨거운 물에 곰피를 살짝 데치면 초록 바다색으로 변한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쌈으로 먹으면 해조류 맛을 느낄 수 있다. 다시마보다 얇고 미역보다 두께가 있다. 식감도 다시마보다 질기지 않고 미역보다 미끈거리지 않다.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초장에 데친 곰피를 그냥 찍어 먹어도 좋다. 아내가 준비한 파, 마늘, 청양고추, 참깨, 참기름을 띄운 간장소스를 곰피에 올려진 밥 위에 몇 방울 떨어뜨려 먹으면 별미가 된다. 싱싱한 곰피 쌈은 바다향을 맛보는 것과 같다. 또 싱싱할 때 먹어야지 냉장고에 두었다가 먹으면 아무래도 바다 맛이 약해진다.
점심에 아내는 아내 표 간장소스와 고추장에 마늘을 얇게 저며 넣은 쌈장을 곰피 옆에 놓았다. 초밥처럼 간장소스를 가볍게 찍어 먹거나 쌈장을 젓가락으로 콕 찍어 곰피에 올리고 그 위에 밥을 얹어 먹었다. 곰피 쌈을 먹으면서 아내가 한 마디 건넨다.
"맛있죠? 저녁에도 곰피 쌈 먹을까요?"
"그러죠." 입안에 곰피 쌈을 넣으면서 대답했다.
"고기 구워서 곰피에 싸 먹을까요? 오래간만에 트레이더스 가요. 오후에 병원 갔다 와서 네시쯤 가요."
아내는 다리가 아프다며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 진료 끝나는 시간이 네시라 그 이후에 가자는 것이다. 아내는 나보다 다섯 살이 아래다. 쉰 고개를 넘자마자 지나온 오르막길의 여파인 듯 다리가 불편해진 모양이다. 거기에 비하면 난 아직은 불편을 느껴 병원 도움을 받아보진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둘 다 불편하게 되면 집안이 블루빛으로 도배될 수 있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방에 들어가 책을 폈다. 아내와 난 방을 따로 쓰고 있다. 내가 새벽에 출근할 때도 있고 야간에 출근했다가 아침에 들어와 잠을 잘 때도 있으니 서로의 수면시간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의 진료가 끝났다는 전화를 받고 출발했다. 평일 오후 늦은 시간대라 트레이더스 월계 매장 안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돼지고기 부위 중 삼겹살보다 등심덧살을 더 좋아한다. 트레이더스 고기 코너에서 등심덧살을 카트에 담았다. 난 슬쩍 홍어도 담았다. 집에 있는 신 김치와 등심덧살, 홍어랑 삼합으로 먹기 위해서다.
막걸리는 해창을 사려고 했는데 트레이더스엔 보이지 않았다. 옆에 있는 이마트 매장을 가야 했다. 딸이 자진해서 가보겠다고 한다. 잔심부름 역할을 하느라 애쓴다. 일단 트레이더스에서 구입한 물품을 계산하고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딸을 기다렸다. 딸이 이마트에서 산 해창 막걸리 두 병을 안고 돌아왔다. 아내는 딸기 막걸리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지만 딸은 찾지 못했다고 전한다.
해창 막걸리, 등심 덧살, 건자두, 생수, 비비고 만두, 꿀호떡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등심덧살을 구우면서 밥 대신 군만두를 먹기로 했다.
돼지고기 등심덧살은 지방이 적고 육질이 부드러워 비교적 굽기가 편하다. 달궈진 불판에 고기를 올리고 1분만 지나면 뒤집어야 한다. 지방 기름이 녹아서 불판 밖으로 튀는 양도 적다. 삼겹살을 집에서 굽다간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야 거실에 고기 냄새가 배지 않는다. 거기에 비하면 등심덧살은 양반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문제는 홍어 냄새다. 홍어 포장을 뜯자 삭힌 홍어 냄새가 온 집안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일단 먹고 볼일이다.
해창 막걸리는 걸쭉한 미숫가루를 마시는 느낌이다. 알코올 12%이면서 화학 감미료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뒤끝이 깔끔하다. 탄산이 없어 막걸리 특유의 트림도 나오지 않는다.
등심덧살을 구울 때 나오는 기름에 비비고 만두를 구웠다. 돼지기름으로 구웠더니 겉은 바삭 고소해지고 속은 부드럽고 촉촉해진다.
한 끼에 등심덧살과 홍어, 막걸리를 싹 다 먹을 수 없다. 홍어는 남기지 않고 먹고 막걸리 한 병은 남겼다. 등심덧살은 1킬로가 넘는 양이라 남은 고기는 다음 날로 미뤘다. 아들이 있었다면 한 끼 식사로 충분했을 텐데 셋이서는 넘쳤다. 먹을 때마다 아들의 부재가 실감 난다. 군대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소식은 듣고 있지만 말이다.
해창 막걸리 한 병이 쉬이 들어갔다. 맛있는 하루가 막걸리와 함께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은 또 다른 날 어느 시간에 추억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더 나이 들어버린 어느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