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운전면허
딸이 드디어 2종 자동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군대 간 아들이 운전면허에 도전했을 때만 하더라도 차의 속도감을 감당하기 두렵다며 운전면허시험은 보지 않겠다고 했던 딸이었다.
어느 날인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도 운전면허를 따 볼까? 슬쩍 떠본다. 그래 도전해! 연습하면 돼. 근데 무서워. 야! 니 나이 또래들 다 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친한 친구가 면허시험에 도전한다고 하니 그럼 나도 해볼까 하고 도전하게 된 것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학과시험에 붙고 기능 시험도 1차, 도로주행시험도 1차로 합격한 것이다. 면허시험에 도전하는 응시생들이 많아 1차에서 떨어지면 뒤로 순서가 밀리게 되어 자칫 의욕도 떨어질 수 있는데 다행이다.
이제 가족 모두 운전면허를 소유하게 되었다. 군인 아들은 수송부대 운전병이니 제대하면 운전을 맡겨도 될 것이다. 더하여 딸까지 면허를 소유하게 됐으니 가족여행 때 덕 좀 볼 것 같다. 그동안 맛집을 가더라도 나만 운전할 수 있어 그 좋은 막걸리 한 잔 마시지 못했는데 앞으론 아들이나 딸에게 운전대를 넘기고 마셔볼까나. 본인 술 마시려고 면허 따게 한 거냐고 아내의 눈총을 맞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아내는 도로연수를 받았음에도 운전엔 약한 모습이다.
요즘은 운전면허를 학원에서 등록하고 면허도 취득할 수 있지만 돈이 많이 든다. 학원비와 시험 응시료 교통비 등을 합치면 백만 원 가까이 들어간다. 만일 기능 시험이나 주행시험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소요 비용이 더 든다. 자신의 용돈이 날아간다는 생각으로 1차에 합격하려고 애를 쓴다. 딸도 시험 보기 전에 각종 사이트에서 주행시험에 관한 정보를 습득했다. 아마도 머릿속으로 수없이 도로를 주행했을 것이다. VR 시스템을 이용한 시뮬레이션 연습장이 있다면 대박 나지 않을까. 비행 조종 시뮬레이션처럼 말이다.
딸의 운전면허 합격을 축하하다 보니 내 경우가 생각이 났다. 1989년 가을에 친구로부터 ‘야매('뒷거래(-去來)'의 비표준어) 운전’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운전면허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단다. 1종 보통면허를 갖고 있는 운전자가 학교 운동장에다가 기능 코스를 그려놓고 그야말로 속성으로 면허만 딸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친구들 중 누가 그 소문을 전달했는지 기억엔 없다.
1990년 1월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친구 둘과 운전을 가르쳐준다는 운동장을 찾아갔다. 운동장에는 굴절 코스, S 코스, T 코스가 야구장 주루선에 사용되는 흰색 가루로 그려져 있고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허접한 트럭 한 대가 부지런히 코스를 돌고 있었다.
그 당시 교습비로 얼마의 돈을 지불했는지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2만이나 3만 원이었을 것이다. 교습시간도 하루에 20분씩 일주일 정도였던 것 같다. 시동 거는 것부터 시작해 굴절 코스를 들어갈 때 오른쪽으로 붙어라 꺾을 땐 어깨선을 맞춰라 등 야매 선생의 코스 공식을 지도 편달받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일이지만 그 당시엔 연습에 열심이었다. 1종 보통 시험 트럭은 기어 변속이 수동 방식이라 왼쪽 발로 클러치를 밟아 기어 변속을 하고, 클러치에 올린 발을 떼면서 우측 발로 액셀을 밟아줘야 주행하지 않나. 처음엔 시동이 꺼지기 일쑤다. 좌측 발을 너무 빨리 떼어서 시동이 꺼지기도 하고, 클러치를 놓아주면서 오른발로 액셀을 밟아줘야 하는데 밟는 타임이 맞지 않아 트럭은 헛구역질하듯이 쿨럭거리다 꺼진다. 몇 번 그렇게 하자 친구 놈은 “군대 안 갔다 왔냐 운동신경이 그리 없게” 하며 핀잔을 준다. 거기서 군대 얘기가 왜 나오는 거냐고.
겨울 추위 속이지만 등에서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배워 면허시험을 보게 되었다. 면허시험장에 가서 학과시험을 치른 다음 기능 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주행시험을 보게 된다. 지금처럼 도로에서 주행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고 면허시험장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주행시험은 신호위반, 돌발 신호, 언덕에서 일시정지 후 주행을 신경 써야 했다. 하나라도 실패하면 탈락하게 되는 구간인 것이다.
1차에 학과와 기능 시험에 합격했다. 합격하고 나자 야매 선생이 주행시험은 신호만 따라서 가시면 되고 언덕에서 클러치를 살짝 놓으면서 브레이크에 있던 우측 발로 액셀을 콱 밟아주라고 조언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덕 아래로 주르르 밀리고 실격이라는 것이다. 주행시험 중 가장 많이 실점하는 구간이다. 나는 야매 선생의 조언에 따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언덕에서 좌측 발이 떨어지기 전에 오른발로 액셀을 밟아 트럭은 왱하는 기침소리만 내고 밑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다행히 그다음 시험에서 합격해 면허증을 갖게 되었지만 본격적인 운전은 4년이 지난 뒤 직장을 얻고부터였다. 그렇게 취득한 야매 면허를 따자마자 운전하겠다고 설쳤더라면 어떤 사고가 났을지 모른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면허시험장 앞으로 걷다 보면 중년 남성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그러나 들으라는 듯이 2만 원, 2만 원 하는 작은 외침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 옛날 면허를 취득하려고 운동장에 그려진 코스를 헤맸던 생각이 나서 홀로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