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반창
코로나 상황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인생의 가치관도 변화시키고 일상마저 변화하도록 강요한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세력에 만물의 영장이란 타이틀을 가진 인간들은 방어책을 강구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직까지 효과적인 방어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저 바이러스가 세력은 약하지만 장수하는 쪽으로 진화하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초등학교란 명칭 이전에 국민학교가 있었다. 난 77년도에 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지금은 혁신도시로 바뀌었지만 그때는 면 소재지에 국민학교가 있었다. 국민학교 6학년이었을 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할 뿐 그 이전은 떠오르지 않는다. 6학년 때의 기억도 그저 편린일 뿐이다. 6학년은 1,2,3 반이 있었고 난 1반이었다.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는 6학년 1반이었던 친구들이 있다. 남녀 합반이라 그중 여자 동창도 있음은 물론이다. 그중에서도 서로의 근황을 궁금해하고 안부를 주고받는 여자 반창 친구를 만났을 때다.
모처럼 국민학교 6학년 1반이었던 반 친구와 쉬는 날이 같았다. 반 친구는 대형마트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고 있다. 이 친구를 만나게 된 계기는 동창 모임에서였다. 문명의 이기인 핸드폰이 보급되고 수도권에서 거주하며 연락되는 친구들만 동창 모임을 결성했었다. 그런 국민학교 친구들끼리 하나 둘 전화번호를 주고받다 연락이 닿게 된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거리 두기와 인원 제한으로 근 이 년간 동창 모임을 열지 못하고 있다.
반 친구의 얼굴을 보려고 해도 그 친구는 대형마트의 비번 일이 일정하지 않고 난 근무형태가 주기적인 구조라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오전에 골프연습장에서 스윙 연습하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전에 건강검진 결과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이제 끝났어 얼굴 볼 수 있니?" 시계는 10시가 지나가고 있었고 친구의 목소리는 기운이 반쯤 빠져있었다.
"그래. 내가 니 집 근처로 갈게" 기운 없을 땐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일 텐데 나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은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별일 아니길.
서둘러 골프를 정리하고 차를 몰았다. 광명까지 1시간 소요된다는 네비 예상을 뒤엎기 위해 다소 빠르게 달렸다. 친구 집 근처에 차를 주차시키고 거리에서 만났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다."내가 먼저 건넸다.
"응, 그렇지 뭐"
"건강검진은, 매년 검사받는 거 말이냐?"
"그려, 지난번에 받았는데 암 수치가 높게 나왔다고 그래서 간 건데 아직은 관리만 잘하면 괜찮다고 하네 의사가. 처방약도 먹어야 하고. " 메마른 음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렇구나 아직은 괜찮다고 한 거구나." 위로하려고 건네는 내 목소리도 건조하다.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그냥 지나가는 것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친구의 눈에게 말했다. '우리 나이엔 건강관리 잘하는 것이 최고야 친구야 걱정 마 잘될 거야' 속으로만 소리쳤다.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과 인생 상담사 코언이 발표한 행복지수 공식 중에서 생존 조건이 가장 중요한 조건인데 건강 돈 인간관계가 그것이다. 코로나 시대 건강의 중요 가치는 따상이 아닐까.
머릿속에서 갖가지 상념들이 꿈틀거렸다. 친구의 키가 이렇게 작았었나 하고 전체 모습을 눈에 넣어 재보고 있는데 갑자기
"너 옹심이 먹을래. 여기 맛있게 해." 친구의 물음에 정신이 들었다.
"그래 먹자."
"메밀밭 옹심이라고 가끔 먹는데 맛있어 국물도 진하고."
가게는 빌라 상가로 반지하층에 위치했다.
"난 옹심이만 넌."
"어, 난 옹심이 칼국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지난 얘기들을 나눴다. 얼굴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가족들 근황을 주고받고 다른 친구들과의 만남에 대해서 얘기하는 동안 보리밥과 무생채 열무김치가 나왔다. 먼저 보리밥을 비벼 먹고 나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옹심이 칼국수는 겉보기에 속초 옹심이와 달랐다. 속초에서 먹었던 옹심이는 회색빛 가까이라면 이 집 옹심이는 연한 노란빛을 뗬다. 국물은 진하고 걸쭉하게 다가왔다. 국수는 납작한 메밀면이고 옹심이는 국민학교 때 가지고 놀던 구슬 크기로 쫀득한 식감이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을 마주하고 오래간만에 먹는 음식이라 맛있게 그릇을 비워냈다.
근처에 광명동굴이 있는데 가보지 않겠냐고 하여 그런 게 있었냐고 뒤따랐다. 광명동굴 입구에 다다르니 하필 매주 월요일이 휴무란다. 아쉽지만 내부 탐방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대신 외부 산책로를 따라 나란히 걸었다.
친구는 인간관계도를 그린다면 가족관계 다음을 차지할 것이다. 남남이면서 가치관이나 성격을 서로 받아줄 수 있는 정도여야 친구관계가 형성된다. 자기주장이 강한 상대와는 친구 하기가 어렵다. 인생의 가치관도 현격한 차이가 있다면 또한 친구관계는 힘들다.
얼굴에 나타나는 세월의 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많아야 노년기 삶이 외롭지 않다. 그때까지 오늘처럼 나란히 걸어야 할 텐데. 그러려면 건강해야 하는데. 건강은 나 혼자만 잘한다고 관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진행한다고 해도 누군 간 고통스럽게 투병할 수 있다. 그 누군가에 우리 나이가 가까이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가 일시 감기처럼 전파력이 약해지고 약 먹어도 일주일, 안 먹어도 일주일이면 완쾌되는 병으로 진화하길 바란다. 국민학교 반창 친구의 암 수치는 누가 증가시켰을까. 시간제 근무일까. 늘기만 하는 나이 숫자일까. 정답을 찾지 못한 내 앞에 싱싱한 초록색 들풀이 봄바람에 하늘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