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둣국을 먹다가
옛날 기억들은 빙산의 모습으로 수십 년간 잠수해 있다. 살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아지면서 옛날 일들이 떠오른다. 그러다가 지금과 옛날을 비교하고 그리워한다. 그것은 회귀하는 연어처럼 어린 날의 나로 돌아가고픈 걸까. 아니면 살아온 날을 기억한 채 그 나이부터 다시 살고 싶은 걸까.
어릴 때 일이다. 언제였는지 정확한 시기는 기억에 없다. 기억의 편린은 현실의 어느 순간 떠오른다. 내가 두레박으로 건져 올린 것이 아니고 불현듯 머릿속에서 돛단배로 나타난 것을 알아채는 것이다.
현실의 어느 순간이냐면 골 때리는 그녀들의 축구를 보다가 방죽 축구가 생각나는 경우다. 겨울이면 방죽이 꽁꽁 얼어 빙판이 된다. 그런 빙판에서 운동화를 신고 축구를 하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도 과거의 입맛이 기억 속을 비집고 살아나 현실의 입맛을 평가한다. 손 만두를 먹다가 옛날 어머니께서 손수 해주시던 칼 만둣국이 생각나는 격이다.
며칠 전 남양주에 있는 옛날에 손 만둣국 집을 갔더랬다. 만두 모양을 보니 속을 가운데로 몰아넣고 가장자리를 손으로 눌러 만든 우주선 같다. 만두마다 크기가 조금씩 다른 게 손으로 빚어낸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만두전골 안에 칼국수도 들어있는 것을 먹다 보니 기억의 열차는 과거로 달린다.
어머니는 밀가루 반죽을 치댄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의 양손은 바쁘게 움직인다. 나무 판대 위에 놓인 반죽 덩어리를 나무 밀대로 가장자리부터 안에서 밖으로 밀어낸다. 피자 도우를 손으로 돌려가며 얇게 펴내는 것처럼 손대신 나무 밀대를 이용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반죽이 펴지면 나무 밀대로 돌돌 말아 양끝을 손목 힘으로 꾹꾹 눌러주며 펴낸다. 손바닥으로 둥근 밀대를 감싸 손목으로 반죽을 밀어내는 것이다. 마치 기계처럼 일정한 속도로 리듬 있게 움직이신다. 그다음 밀대에 돌돌 말인 도우를 고기 잡는 투망을 던지듯 바닥에 펼친다. 바닥엔 달 지난 대형 달력 종이를 서너 장 깔고 그 위에 밀가루를 뿌려두었다.
큰 원형 모양이 되어가는 도우를 나무 밀대로 돌돌 말아 끌어당기며 감고 양 끝을 눌렀다 다시 펼친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만두피는 완성이다. 마지막으로 바닥에 넓게 펼쳐진 얇은 도우를 주전자 뚜껑으로 누르면 둥근 만두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두피를 만든 후 남은 조각은 칼국수 사리로 변신시킨다. 반죽을 손으로 주물럭거릴 수 없는 어린애를 둔 어머니 시절 얘기다.
조금 성장해서는, 손으로 모양을 낼 수 있는 나이 땐 반죽을 조각내어 손바닥으로 한 번 누른 다음 작은 봉으로 밀어 만두피를 만들었다.
이 작업도 손이 많이 간다.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일정 시간 동안 숙성시킨다. 다음에 반죽을 칼로 떼어낸 다음 손으로 주물럭거려 가래떡처럼 길게 만든다. 그것을 칼로 깍둑 썰어 조각낸다. 조각을 가지고 손으로 둥글게 피고 작은 봉으로 밀어 만두피를 만드는 것이다. 주로 남자인 내가 담당했다. 워낙 손 힘이 요구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만두를 직접 빚기도 했다. 이쁘게 만두를 빚으면 이쁜 마누라를 얻는다는 놀림을 당하면서 말이다.
입맛이란 것이 참 묘하다. 현실의 입맛을 가지고 옛날 기억 속에 잠긴 입맛을 깨우고 비교한다. 그때 그 맛이 정녕 기억 속에서 살아남아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뭔가 익숙한 냄새와 맛을 느끼면 옛날 맛인데 한다. 어머니의 손맛이 이랬던가 하기도, 이랬을 것 같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옛날 맛을 그리워하는 것이 다시 어린 나이로 돌아가고픈 무의식의 작용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만 옛날 맛을 찾아다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