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소소한 이야기

제철이란 것이

by 폴초이


한낮의 기온이 초여름을 느끼게 한다. 저녁에 아내는 김치찌개를 메인 요리로 사이드는 두릅 튀김을 하겠단다. 우리 집 장 보기는 건영 백화점 지하 마트를 주로 이용한다. 장 보기는 딸이 도맡는데 나도 가끔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아내가 나에게 장 보기를 시키는 이유는 따로 있다. 딸은 시키는 것만 사 오지만 난 이것저것 더 사 온다. 예를 들어 찌개용 돼지고기와 두부, 두릅만 사 오라고 했지만 난 과일도 사고 요거트도 산다.


어떤 과일을 사 갈까 살펴보았다. 마트 안에는 딸기, 토마토, 참외, 수박, 냉동 부사, 신고 배 등 국내산 과일뿐 아니라 바나나, 애플망고, 노랑 망고, 아보카도, 파인애플 등 외국산 과일들이 진열되어 있다.


지금은 봄과 여름이 어깨동무하는 간절기이다. 마트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는 과일 중에서 어떤 과일이 제철인지 어리둥절해진다.


봄이면 딸기, 토마토를 먹는다. 여름이면 참외, 수박, 복숭아를 먹는다. 가을이면 사과, 배, 감을 먹는다. 계절의 변화대로 먹는 과일이 정해지고 그 계절의 과일을 우린 제철 과일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동네 마트엔 수박, 냉동 부사를 같이 팔고 신고배도 팔고 애플망고 아보카도를 팔고 있다. 겨울에 팔아야 할 냉동 부사를 봄이 지나 여름에도 팔고 있으니 기술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다. 하기야 외국산 열대과일이 노상 마트 판매대에 올라있을 정도니 두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난 참외를 골랐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자연이 주는 혜택을 고스란히 받지 않게 되었다. 씨를 뿌리고 물과 햇빛의 도움으로 열매가 열리면 그저 따먹기만 했던 시절을 벗어나고자 노력해왔다.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그 안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하고 계절에 앞서 출하한다. 겨울에는 좀체 먹을 수 없었던 딸기는 이제 겨울이 제철이 되었다. 입하가 되기 전에 여름 과일인 수박, 참외가 등장한다. 제철 과일이란 개념을 다시 정립해야 할 것이다.


현대는 아이들도 성장이 빠르다. 성장이 빠르다는 의미가 신체 발육상태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유아들은 유치원에 가기 전에 벌써 한글을 깨친다. 과일을 제철보다 빨리 키우는 것처럼 아이들을 제 나이보다 빠르게 육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초등학생이 되면 공연히 칭얼거리거나 떼를 쓰면 학교에서 뭘 배우냐며 야단치기 바쁘다. 감정에 따른 행동을 멈추고 이성과 논리로 행동하길 바란다. 너무나 빨리 자랄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그래서 철이 일찍 든 아이들이 많은가 보다.


제철이란 알맞은 시절을 뜻한다. 제철 과일은 그래서 신선하고 맛이 좋다고 한다. 그 계절의 햇빛과 물, 공기를 먹고 자라야 먹기 좋은 과일이 된다는 의미일 터다.


겨울에 출하한 딸기는 비닐하우스에서 사람이 맛 좋은 딸기로 육성한 것이다. 딸기의 대표 품종인 설향도 사람의 기술로 개발한 것이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개발하고 육성한 것들이 제철을 건너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하루라도 빨리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이 소득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양육도 제철을 앞서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이들도 성장하는데 알맞은 시절이 있을 것이다. 신체가 성장하는 속도만큼 두뇌의 성장이 따라주면 제철보다 앞서 나간다. 그렇지 않은 아이는 간발의 차이만큼 뒤처지게 된다.


간발의 차이를 두고 보지 못하는 부모는 아이들을 독려하게 된다. 독려하는 방법이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과일 농사는 한 해 망 치면 다음 해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 아이들은 아니다.


제철을 건너뛰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구와 실패를 이겨내야 한다. 뭐든 순조롭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 딸기 농사꾼이 딸기를 '얘네들'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아이 키우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