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신선대에 오르다
하늘은 찌푸리고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다. 불어오는 바람은 비를 숨긴 살랑바람이다. 폐부 끝까지 들숨 하자 온몸이 시원해진다. 마스크를 착용하고도 청량함을 느낄 수 있다. 도봉산역에서 바라본 자운봉의 기세가 꼿꼿하다. 토요일 딸과 함께 도봉산을 올랐다.
마당 바위로 해서 천축사를 경유해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내려오는 길은 칼바위를 돌아오는 길로 올라올 때보다 쉬운 코스다.
주말이라 그런지 산행객들이 많았다. 초록빛으로 물든 산은 수채화로 그려낸 것처럼 맑고 투명했다.
딸은 마당바위에 이를 때까지 조금 힘겨워했다. 그래도 북한산 산행 때보다는 괜찮다고 한다. 마당바위에서 보이는 하늘엔 검정 구름과 흰 구름이 몰려다닌다. 구름을 뚫고 내려온 빛줄기에 도심 일부가 환하게 빛난다. 마치 조명에 비친 배우의 모습처럼.
마당바위에서 커피를 마셨다. 내가 산행 때 들고 다니는 휴대용 커피 머신 와카코 NS 나노 프레소를 이용했다. 에스프레소 캡슐커피를 두 개 정도 추출한 다음 온수를 부어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마당바위는 신선대까지 1킬로미터 정도 남긴 지점이라 충분히 휴식한 다음 올라야 한다. 남은 구간은 경사도가 가파르게 이어져 힘을 비축할 필요가 있다.
"너의 한계를 넘어선다고 생각해" 딸에게 주문했다. "다음 산행지는 관악산이다"
"알겠어" 딸은 짧게 대답한다.
신선대 정상 표지석까지 마지막 바윗길에는 인증 촬영을 하려는 사람들이 일렬로 대기 중이었다. 그들 뒤에서 자운봉을 보니 중간쯤에 작은 진달래꽃이 보였다.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멀리서 구별하기 어려웠다. 키는 철쭉인데 분홍 꽃이 진달래 같다.
바위 위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면 키가 크긴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다가 자운봉 바위 틈새에 삶의 터를 잡았을까. 어느 해 봄바람 타고 바위까지 올랐을 것이다. 자신의 비관적인 생존을 뛰어넘어 기어코 꽃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에 놀랄 뿐이다.
어떤 사람은 비빌 언덕이 없어 성공하지 못한다고 자신의 가정환경을 비관만 한다. 그런 사람이 저 작은 꽃나무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처한 환경과 식물들의 그것과는 비교하기가 무리가 있다. 그러나 누구라도 비관적인 처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환경에서 기어코 성장하고 꽃 피우는 생명력은 본받음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날씨는 흐려도 신선대 정상에서 바라본 경관은 볼만했다. 시계는 비교적 선명해 서울의 랜드마크인 롯데타워가 보일 정도다. 정상 우측으로 보이는 능선 길 바위와 초록나무의 풍경은 동양화를 보는듯한 정취를 느끼게 했다.
하산길은 칼바위를 지나 주봉 능선을 택했다. 하산주는 산 두부집에서 갖기로 했다. 하산하면서부터 포두부 삼합에 막걸리 한잔이 당긴다. 입안이 바짝 말라야 막걸리 맛이 꿀맛이 된다. 내려가면서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딸이 얘기한다. "개그맨 김준현이 그러는데 가장 맛있는 맥주는 운동하고 땀을 쫙 뺀 다음 목이 말라도 물을 안 먹고 샤워하고 나서 캔맥주를 마신다는 거야 그 맛이 최고래"
산 두부집에 자리 잡고 앉자마자 막걸리 한 병과 제일 메뉴인 포두부 삼합 세트를 주문했다. 세트를 시키면 맑은 탕 두부찌개까지 준다. 막걸리를 잔에 따르니 살얼음이다. 우선 먼저 딸과 일 잔을 나눴다. 살얼음 막걸리가 아랫배까지 시원하게 한다. 바로 이 맛을 보기 위해 몸 안의 수분을 최소화했던 것이다. 포두부에 홍어, 돼지고기 삼합은 홍어의 톡 쏘는 맛을 두부와 돼지고기가 담백하게 잡아준다.
딸과 함께한 산행에 살랑바람이 끼어들었다. 산행 중에 한두 방울 내리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닿지 못했다. 나무들의 싱싱한 초록 잎이 우산이 되었다.
생기발랄한 나무들 덕분에 나와 딸은 한동안 생기 있게 생활할 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늘 주기만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