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에 탄 반려견
개들의 지위가 사람을 넘어선 것 같다. 땅 위를 네발로 걸어야 할 개가 사람의 품 안에서 논다. 아이를 태우는 유모차에 개가 다소곳이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개를 요즘은 반려견으로 부른다. 반려자는 짝이 되는 사람을 뜻한다. 반려견은 한 가족처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개를 의미한다. 반려견의 위치가 가족의 일원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오후의 산책코스인 당현천을 걸었다. 당현천의 모습은 봄을 지나 여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당현천 바닥에 낀 이끼를 제거하는 청소차가 바쁘게 움직인다. 흙탕물 속에서 물고기들은 어찌 숨을 쉴까 걱정도 된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반려견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젊은 층은 반려견에 끌려다니다시피 종종걸음으로 뒤쫓는다. 중년층은 반려견이 허튼짓을 할까 목줄을 당겨가며 걷는다. 개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는 분은 대개 노인분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개는 네발로 땅을 걷는 동물이다. 아니 그렇게 걷도록 만드신 분이 계시다. 네발로 걷지 않으면 몸이 망가지도록 말이다. 걷지 않고 주로 앉아만 있으면 관절통이 온다고 한다. 두발로 직립보행을 하던가 유모차를 타고 다니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설령 먼 훗날 유모차를 타던 습관이 몸에 배고 그런 체질로 진화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올지 안 올진 아무도 모른다.
산책로에서 만나는 개중에서 주인과 나란히 걷는 개는 쉼 없이 코를 킁킁댄다. 마주 오는 개를 보면 짖고 다가가려 애쓴다. 자신이 표시한 영역 속에 다른 개가 영역을 표시했다면 마주 오는 개가 아닌지 확인하려는 짖음은 아닌지 모른다. 개는 그렇게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유모차를 타고 가는 개는 이런 행동이 없다. 만일 집을 떠나 주인과 헤어지기라도 한다면 돌아올 길이 없다. 자신이 표시한 지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의 사랑이 개의 본성을 말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사람을 배신하지만 반려견은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주인이 이뻐라 하는 대로 개도 주인을 존중하는 것은 아닌지를. 개에게 무한 신뢰를 하기에 개도 따라주는 것은 아닌지를. 그런 무한 신뢰를 사람에게 보낸다면 개보다 더한 사람의 보답이 돌아오지 않을까를. 개에게 보내는 사랑만큼 사람에게 보내지 않아 배신당하는 것은 아닌지를.
아기 유모차에 개를 태우고 다니는 노인분을 보다가 혹시 저 개는 걷고 싶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각의 고리를 길게 하다 보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반려견은 반려자가 아님을, 본래의 처지대로 살게 하는 것이 사랑일 수 있음도 생각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