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군대 면회
어버이날과 부처님 오신 날이 겹친 일요일이다. 군대 간 아들이 며칠 전부터 면회를 와달라고 했다. 이번 달에 휴가도 나올 예정인 놈이 면회를 부탁하기에 혹시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나 걱정했다.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지만 혹시나 하는 노파심이 크게 작용하는 군대니 안 가볼 수 없어 다녀왔다.
아들의 군대 생활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군대 생활을 했던 시절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아들이 겪는 심리적인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군대에 갇혀있다는 심리문제는 각자가 극복해야 할 문제다.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것 같은 느낌 말이다. 그렇지만 핸드폰 사용과 외출, 외박, 휴가 등 개인 복지혜택이 나 때와는 천양지차다.
난 1986년도에 입대하여 최전방 부대인 철원에서 군대 생활을 했더랬다. 자세한 군대 생활을 말할 수 없지만 군사 분계 철책선, 대남방송을 접할 수 있었다. 황금마차로 불리던 PX 차량에 환호하던 때도 있었다. 상병 아들 월급이 60만 원이던데 난 5천 원 정도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5천 원으로 뭘 살 수 있나 궁금할 수 있지만 그땐 그 돈으로 과자류를 살 수 있었다. 분대원이 합동으로 돈을 모아 과자, 음료수를 사서 먹었던 추억도 있다. 아련하기도 아프기도 한 군대의 기억이다.
난 아침에 퇴근하여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기로 했다. 그 사이 딸은 동생이 좋아하는 떡볶이에 순대, 도넛을 구매하러 공릉동을 다녀왔다. 집에서 11:30에 출발해야 부대까지 여유 있게 도착할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딸이 조금 늦겠다고 전화가 왔을 때 아내는 나보고 과일을 사 오라고 갑자기 주문한다.
난 " 언제 사다가 씻고 가져가요? 근처 가서 사던가요!" 약간 큰소리가 나갔다.
아내는 "카드 주세요 내가 사 올 테니까요"한다.
"과일을 사고 싶으면 내가 자고 있을 때 미리 사 왔어야죠." 퉁명스럽게 들릴 수 있었다. "언제 사다가 씻냐고요. 가야 되는데 시간 맞추려면"
아내는 기분이 급 상했는지 말문을 닫는다.
난 밖으로 나가 먼지로 뒤집어쓴 차를 먼지 떨이개로 닦았다. 잠시 후 딸과 아내가 차로 다가왔다.
동부 간선도로를 진입하니 차량들이 도로를 점령한듯했다. 어버이날과 부처님 오신 날의 여파로 외곽으로 나가는 도로가 꽉 막혔다. 갑갑한 도로 정체를 보니 출발 전 아내와 얼굴 붉힌 과일 문제가 겹쳐 마음은 더 답답했다. 빨리 마음을 전환해야 아들 얼굴을 편히 볼 텐데 말이다.
참 사람 마음이 그렇다. 난 아침에 퇴근해서 잠깐의 시간 동안 잠을 자다 일어난다. 차를 운전하려면 졸음을 떼 버려야 하기에 말이다. 그런 나의 상태를 가늠하여 면회 준비물은 미리 준비하면 안 됐을까 한다. 아내는 모처럼 아들을 면회 가는데 이것저것 저 좋아하는 음식을 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이것도 사 갔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에서 과일 구입도 꺼냈을 것이다.
서로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 먹어도 타인의 마음속까지 헤아려 내 언어와 행동을 제어하긴 어려운가 보다. 내 몸 먼저 생각하는 습관적 생각은 버릴 수 없나 보다.
아내와 내가 마음 심란할 때 해결사는 딸이다. 딸 없는 집은 어찌할까 한다. 딸이 옆자리에 앉아 지 엄마 편을 든다. "왜 엄마 속을 긁었어 아빠! 아들 보고 싶어 잠도 설친 엄만데!"
"그래 내 탓이네. 딸이 나갈 때 같이 일어나 과일을 샀으면 됐잖아요." 웃으며 대꾸했다. "엄만 내가 나갈 때 일어났어야죠."딸이 한마디 한다.
"아 됐어!" 아내의 음정은 이단 높은음 도였다.
"아빤 왜 그랬어 엄마 맘을 알면서!!" 딸도 덩달아 높은음으로 일갈한다.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난 짧게 자기반성 모드로 돌입했다.
아들이 먹고 싶어 하는 초밥을 사기 위해 금천 역 주변의 유명 초밥집을 검색했다. 유명 맛집은 초밥 주문 후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해서 다른 초밥집으로 주문했다. 트레이더스 초밥보다 맛과 구성이 빈약했다.
부대 앞에 도착하여 면회 신청하니 자가 키트로 검사 먼저 하란다. 부대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자가 키트를 구입하고 검사하여 셋이 음성이라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면회 오기 전에 음성 확인서를 가져왔어야 한다는 설명이지만 자가 키트로 가능해 다행이었다.
아들은 다소 검게 그을린 얼굴로 나타났다. 어디 아픈 데 있는가를 제일 먼저 묻게 된다. 아들은 아무 일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아들 앞에 초밥, 떡볶이, 순대, 도넛을 풀었다. 먹성 좋은 아들은 아침도 굶었다며 초밥부터 떡볶이, 순대를 넘나 든다. 그래 열심히 먹어두거라.
돌아오는 길은 차량 정체가 극심했다. 마음 한편은 정체 차량처럼 막혔다. 곧 또 볼 수 있지만 꼭 두고 오지 못할 곳에 두고 온 것처럼 불편하다. 나 때보다 훨씬 편하게 지내는 것 같은데 잘 견뎌낼까 노파심이 든다. 아들이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