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있는데 꿀벌은 어딨어
봄바람 휘날리며 걷기 딱 좋은 날이다. 거실 창으로 비치는 햇살이 강렬하게 보인다. 여름엔 반팔 셔츠만 입은 채 걷고 나면 몸에 셔츠 자국이 선명하게 남던 기억이 났다. 속에 반팔 셔츠를 입고 바람막이 점퍼를 챙겼다. 밖으로 나오니 아직은 뜨거운 햇살 공격에 피부가 검게 탈 염려는 없어 보였다. 바람막이 점퍼는 허리에 두르고 반팔 차림으로 나섰다.
꿀을 먹은 적이 없는데 달콤한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향기에 자극받은 입안은 단침이 가득해진다. 무엇인가 주변을 둘러본다. 가시 달린 나무 아카시아에 꽃 초롱이 잔뜩 매달려있다. 저놈들이 지나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가. 아카시아 향은 바람을 타고 세상 곳곳으로 향한다. 목적지 없이.
윈드서핑을 즐기는 아카시아 꽃향기에 취해 쉽게 걸음을 떼지 못한다. 심호흡을 몇 차례 반복해 본다. 온몸으로 꽃향기가 스며드는 것 같다. 아카시아 꽃향기는 내 몸에서 발산할 수도 있는 불쾌한 냄새를 제거해 준다. 이래서 꽃향기를 사람들이 좋아하는가 보다.
아카시아꽃을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어릴 때 아카시아꽃을 보면 꿀을 머금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먹어보기도 했다. 달달한 아카시아 꿀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꽃을 따려면 꿀벌들과 작은 다툼을 벌여야 했다. 꿀벌은 꽃 속으로 숨어들어 열심히 화분을 채취하고 있다. 인간인 내가 꽃을 꺾으려고 하면 꿀벌은 놀라 나에게 경고의 날갯짓을 해대는 것이다.
꿀벌이 못 이기는 척 다른 꽃으로 날아가야 난 한 송이를 따서 맛볼 수 있었다. 꿀처럼 단맛이 났었는지 확실한 기억은 없다. 아마도 많이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바라볼 뿐이다.
예전엔 아카시아꽃이 피기 시작하면 꿀 채취에 바쁜 꿀벌들을 볼 수 있었는데 요새는 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등산 중에 산속에 벌통을 늘어놓은 양봉업자의 영업맨 꿀벌들만 볼 수 있다. 그런 꿀벌들도 근처에 핀 꽃만 찾아다닐 뿐이다. 중랑천 당현천 산책로까지 비행하는 꿀벌은 보이지 않는다. 그 많던 자영업 꿀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
당현천 산책로에 조성한 꽃밭의 꽃들은 향기가 없는가 궁금하다. 분명 내 콧속을 파고드는 향기가 있는데도 벌들을 볼 수 없다. 벌은 맡지 못하고 나만 맡는 향기인가. 아니면 멀리 있는 벌에게까지 그 향기가 닿지 못하는가. 봄바람에 실린 꽃향기는 어디로 날아가는지 모르겠다.
꿀벌에 관한 자료를 검색해 본다. 지구 상에서 벌이 사라지면 몇 년 후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고 한다. 벌이 사라지는 이유들은 다양하다. 가장 큰 이유는 기후변화와 약물 사용이 아닐까 한다. 꽃 사진을 찍고 있는 나의 핸드폰 신호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난제 때문이라면 대책은 가능한가 의문이다.
일벌은 벌통으로부터 약 4킬로미터까지 비행한다고 한다. 도심 속에서 좀체 날아다니는 벌을 볼 수 없는 이유이겠다. 달콤한 향기가 퍼져나가도 쫓아올 벌이 없는 것이다. 시골지역은 더 하다고 한다. 살충제 살포로 벌통에 벌들이 실종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카시아 향이 바람을 타고 꿀벌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향기에 취한 꿀벌들이 벌통을 들고 향기를 쫓아 당현천 산책로까지 날아왔으면 좋겠다. 자연은 원래 그들의 것이었을지 모른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희생하는 자연의 산물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