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와의 하루
고향 故鄕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을 의미한다. 물리적 장소를 말한다. 고향 친구는 그리운 마음을 만들어준 존재다. 고향 친구를 만나러 갈 때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원초적 자아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족 다음의 존재이다.
유아기를 지나 아동기가 되면 부모를 인지한다. 소년기가 되면 내 또래를 '친구'라 칭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부모 다음으로 가장 가까이 인간관계를 맺는 존재가 고향 친구다.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 친구들보다 고향 친구는 다른 특별한 존재다. 특별한의 사전적 의미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서로 못 볼 꼴을 더 많이 보고 자랐다는 거다. 서로의 치부까지도 잘 알고 있다. 미운 정 고운 정이 적당히 배분되어 마음속에 자리 잡는 것이다.
고향 친구만 소중하고 다른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만남 시기가 빠른 만큼 더 오랫동안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다. 아무런 심적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존재다. 마음 꾸밈이 필요 없다. 나만 그런가.
시외버스 예매 앱인 '티머니 go'를 통해 진천행 다섯 시 버스를 예매했다. 출발하는 날 동서울 터미널에 버스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버스 관계분에게 표를 보여주며 빨리 가는 버스에 승차해도 되냐고 문의했다. 그분이 네시 십분 차에 타면 된다고 한다. 빈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앉으면 된다는 것이다.
고향 친구 둘을 금요일 진천에서 만났다. 한 친구는 뒤늦게 귀향하여 수박농사 2년 차이고 다른 친구는 서울시내버스기사로 재직 중이다. 버스기사 친구는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주말에 귀향하고 있다. 이번이 귀향하는 주말이라 함께 만났다.
진천은 예부터 '생거진천'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살고 싶은 고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진천이 가까워질 때쯤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약속한 저녁 일곱 시에서 삼십 분을 당겨 만났다.
일차는 소 막창구이부터 시작했다. 식당에 친구 H랑 내가 먼저 도착해 막창을 주문했다. 친구 H는 늘 변함없는 몸이다. "넌 항상 그대로다. 여전히 술은 잘 먹냐?". "그치 매일 한 병씩이지. 아직은 까딱없지."
"사장님 소막창 2인분 주세요. 맛있죠?" "야 맛있쥬" 오래간만에 고향을 찾아도 이상하게 충청도 사투리로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뒤이어 친구 J가 도착했다. 수박 농사꾼은 살이 빠지고 구릿빛 얼굴이다.
"아이고 배만 나와" 농사꾼 다 된 얼굴로 나타난 친구 J가 한마디 던진다.
" 전에 보다 좀 빠진 것 같은데 "내가 대꾸했다.
막창구이로 가볍게 위장과 간 수치를 달랬다. 대구 막창구이와 맛을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농촌 읍내 식당의 소 막창구이는 술맛을 달게 했다. 고소하고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나 술이 달아진 걸까. 셋이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그런 걸까.
이차는 수박 농사꾼 친구의 기운 도울용으로 먹었다. 농사일에 대한 힘든 과정 얘기를 나눴다. 좀 더 젊은 나이에 귀향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한다. 뭐든 하다 보면 좀 더 빨리 시작했더라면 하는 가정법에 잡히고 만다. 그런 거다 왜 진작 서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데 그땐 그때 일이 우선이었으니 그랬는데 뭘.
진천읍내를 걸으면서 보니 외국인들을 위한 마트가 보였다. "외국인들이 많은가 보다. 외국산 마트가 있는 거 보면" "야 말도 마. 외국인들 없으면 수박농사, 딸기 농사가 되질 않아. 일당도 13만 원은 줘야 되고." 농촌 현실의 어려움 중 하나가 일꾼 구하기라며 농사꾼 친구가 응답한다.
그렇구나. 신토불이면 뭐하나 외국인들의 손길이 없으면 밭작물을 수확하기 힘든데. 그런 농산물을 신토불이라고 자랑할 수 있을까.
셋이 만나는 날은 소란하다. 목소리 높여가며 얘기를 나눈다. 삼차는 뼈 없는 닭발이다. 다소 짠맛이 강했지만 마무리로 안성맞춤 안주였다. 다음날 새벽같이 수박하우스로 달려갈 친구를 위해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끝냈다. 술 마시기 전에 헛개나무 약을 먹어서 그런가 술기운이 천천히 돈다. 술병을 빈병으로 꽤나 만들었는데도 알딸딸한 기분 그대로다. 술 먹기 전에 먹은 약기운 때문이겠다.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취하고 또 취한들 어떠리 땅이 발목을 잡는 것인지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걸음을 늦추는 것인지 술아 그만하면 됐다 놓아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