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마녀를 읽고서
전날의 산행과 하산주로 몸이 만근이다. 아침을 여는 햇살의 문안인사를 받지 못했다. 눈을 감은 채 손가락 발가락에 의식을 집중했다. 몸은 분명 깨었지만 일어나 앉으려는 의지에 따르지 않는다. 이럴 땐 그냥 누워 집 밖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누워있는 몸을 바라보고 바닥에 닿는 부위를 느낀다. 엉덩이와 척추 전체, 등을 의식한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점심 드실 건가요?" 아내가 방문을 열고 고개만 빼꼼히 들이민 채 묻는다.
"네, 라면 있나요?" 밥보다 라면을 찾았다.
"네, 너구리 있네요. 혼 자 끓여 드세요."
"알겠어요."
술 마신 다음 날 아내의 친절을 기대하면 안 된다. 가정 규칙이다. 가끔 예외적일 때도 있지만.
기운 차리고 일어나 라면을 끓여 나 홀로 먹었다. 속이 좀 풀린다. 밤새 막걸리의 잔여물을 분해하느라 간장은 애썼나 보다. 얼굴 부은 것 좀 보라는 아내의 핀잔을 듣고 거울을 보니, 넌 누구냐고.
먹고 씻으니 살만해졌다. 생강차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흐릿한 정신 상태를 다소 맑음으로 바꾸기 위해선 추리소설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의 마녀'(2016, 현대문학)를 펼쳤다. 노원 평생학습관에서 대출했다. 작가의 역량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는 생각이다. 생전 처음 보는 단어들을 네이버로 검색하면서 읽어 나간 책이다.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 라플라스 이론 등 물리학, 뇌의학세계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의 신체 조직 중에서 '뇌'영역만이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을 것이다. 책 안에서 특이한 점은 뇌세포 이식 수술로 액체류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인간으로 변신한다는 착상이다.
소녀 마도카는 식당에서 테이블에 쏟아진 물의 흐름을 미리 알고 핸드폰을 옮긴다. 비가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씨임에도 몇 분 후면 비가 온다고 예보한다. 비가 그칠 기미가 없는데도 몇 시간 후 그칠 것이라고 예측한다. 뇌세포 이식 수술 이후 얻게 된 능력이다.
아마도 소설의 모티브는 이런 것인가 보다. 인간은 두뇌를 10%만 사용한다는 속설이 있다. 좌뇌는 논리 연산에 우뇌는 추상적인 연산에 작동한다고 알려져 있다. 뇌세포에 자극을 가해 1천억 개의 뇌세포가 동시다발적으로 연산한다면 어떻게 될까.
옮긴이의 말에서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 라플라스는 '어느 순간 모든 물질에 있어서의 역학적인 데이터를 알고 그것을 순식간에 해석할 수 있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의 불확실성이 없어져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그런 지성의 존재에게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뇌세포 전체를 동시에 자극해 연산 작용을 한다면 책에서 등장하는 일기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현실적으로 그 많은 뇌세포가 동시에 활성화하여 발열한다면 살아남을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상상하게 만들었다.
2016년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타트업 뉴럴 링크는 2021년 2월 원숭이 뇌에 비디오 게임을 할 수 있는 컴퓨터 칩을 이식했다고 밝혔다. 머스크를 비롯한 100여 명의 뉴럴 링크 연구자의 최종적 목표는 동물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인간 두뇌에 칩을 심어 생각만으로 전자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보도되었다.
머스크의 실험을 통과한 사람들이 다수라면, 이 세상의 물질들의 운동 법칙 데이터가 주어진다면, 미래는 그들의 예측을 신뢰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머스크는 로켓 추진체를 회수하여 재활용하는 기술을 계속 성공하고 있다. 기술은 실패하면서 향상된다는 이론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두뇌에 칩을 심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불확실성의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책을 덮고 다시 누웠다. 테슬라의 오너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뇌신경 과학 기업 뉴럴 링크가 원숭이 학대 논란에 휩싸였다는 보도가 떠올랐다. 두뇌에 칩을 삽입당한 원숭이들이 탈출하면 혹성 탈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