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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초이 Feb 04. 2023

인생 살기 2

입춘대길


차를 바꿀까? 아니, 아냐. 집을 사서 이사 가자! 아니, 아냐. 직장을 그만둬버리자. 남은 3년 동안 벌어야 얼마나 벌까. 당장 그만 두자. 그래, 그거야. 돈 걱정 없이 여행이나 다니다가 볕 좋고 물산 풍부한 지역에서 한 달쯤 살다 아니 일 년은 살아봐야지. 그래, 그렇게 사는 거지. 그게 사람답게 사는 거 아니겠어. 아무렴.


 길가에 길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이다. 누가 서 있으라고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니다. 복권판매기를 기준으로 안에서부터 출입문 밖으로 나와 긴 인간띠를 만든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앞사람의 뒤에 선다.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서 있다 한 걸음씩 앞으로 다가간다. 복권판매기 앞까지.


 서있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누군가 말을 걸기라도 할까 딴짓에 열중이다. 핸드폰을 보거나 하늘을 보거나 땅만 본다. 지나는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서 있다 걸음만 옮긴다. 혹여 복권을 사기 전에 입을 열면 복이라도 달아날까 염려해서일지도. 묵언수행자처럼 입 밖으로 말을 하지 않아야 운수 대통에 당첨된다고 누가 말해줬는지도 모를 일이다.


 입춘대길. 입춘의 절기인 토요일 복권 판매소마다 만 원이다. 오늘의 운수 좋은 날, 행운은 누구에게 날아가 앉을까. 그 운이 내 어깨에 앉는다면 좋으련만. 대박복권방앞에 사람들이 복권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지금의 복권을 사지 않고 미리 준비한 복권을 사려는 사람은 줄 서지 말고 들어오라는 입간판을 입구에 세워놓았다.


 지금의 복권을 사는 거나 판매소에서 미리 준비한 복권을 사는 거나 어떤 차이가 있는지 미루어 알 수 없다. 어차피 복권 번호는 시험문제지의 문항과도 같지 않는가. 수많은 복권 번호의 문항을 토요일 저녁 로또 기계가 맞추는 것이 아닌가. 어떤 번호가 맞을지 누구도 알 수 없지 않은가. 어제 산 복권이 맞을지, 오늘 산 복권이 맞을지 모를 일이다.


 중랑천 산책로를 따라 봄맞이 산책을 하다 보니 대박복권방 근처임을 알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나도 복권을 샀다. 줄 서지 않고 판매소에서 준비한 복권을 사고 보니 2.3 금요일 21:35:52초에 발행한 것이다. 당첨일에 나처럼 줄 서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어젯밤 늦게 발행한 복권이다. 줄 서는 정성을 다하지 않아 당첨 확률이 낮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당첨일, 로또 기계가 뽑아 올린 공이 부리는 요술에 기댈 뿐이라는 한적한 마음을 행운의 여신이 붙들지도 모른다.


 입춘대길의 기운을 받아 운수 좋은 날을 잡고 싶어 로또 시간보다 일찍 글을 발행해 본다. 여신의 선수를 끊고 내가 먼저 선수를 잡아 두면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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