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를 물리학 법칙으로 해석해 본다면...
과학과 관련한 글을 읽은 후 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조직문화와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다시 이불을 차고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물리학에서 열과 에너지와 관련하여 유명한 법칙이 있다. 바로 에너지의 '평형'과 관련한 '열역학 제0법칙', 에너지의 '보존'과 관련한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의 '관계'를 다루는 '열역학 제2법칙', 완벽한 질서의 불가능성을 다루는 '열역학 제3법칙'이다. 물리학에 대해 심도 있게 들어가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기 때문에 이 법칙들에 대한 간단한 정의만 확인해보고, 이번 주제인 '열역학 법칙과 조직문화와의 유사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먼저 '열역학' 이론은 '열과 에너지를 물체의 온도나 상태와 관련지어 설명하는 학문'이다. 쉽게 말해 열과 에너지가 어떻게 이동하고 변화하는지를 연구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1) 열역학 제0법칙 : 열 평형을 이루고 있는 두 물질 사이에는 열의 이동이 없다는 원칙. 예를 들어 온도가 같은 두 컵의 물을 섞어도 온도의 변화가 없다는 의미.
2) 열역학 제1법칙 : 고립된 환경에서 에너지의 총합은 일정하다(보존된다)는 원칙. 즉 방 안에 있는 뜨거운 커피가 식으면, 커피가 식은 만큼 방 안의 온도가 올라간다는 의미.
3) 열역학 제2법칙 : 고립된 환경에서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는 원칙. '엔트로피'는 물리량을 나타내는 척도이며, 엔트로피가 증가할수록 무질서하게 되고, 엔트로피가 감소할수록 질서를 찾게 되는 것을 의미함.
4) 열역학 제3법칙 : 절대 0도는 불가능하며, 절대 0도에 가까워질수록 엔트로피의 변화량은 0에 가까워진다는 원칙. 즉 온도가 낮아질수록 분자의 이동이 감소한다는 의미이자, 절대 0도가 되면 완전한 질서를 찾게 되지만 이는 구현할 수 없다는 뜻. 기체 ▷ 액체 ▷ 고체로 갈수록 분자 활동이 덜 활발하게 되는 사례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엔트로피가 0이 되는 절대 0도를 섭씨 -273도로 계산하였고, 이 절대 0도를 '캘빈(K)'이라 부른다.
※ 상기 개념에 대한 사전적 정의보다는 글쓴이와 같은 비전문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정의한 것임을 참고하기 바람.
조직문화를 열역학 제0법칙에 빗대어 보면, 애초에 완전히 똑같은 생각, 철학, 일하는 방식, 태도 등을 가진 사람들끼리 조직 안에서 만나 일을 하게 되면, 그들이 지닌 성향 그대로 조직문화가 형성되며,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그 조직 안에 새로 유입이 되더라도 그 문화의 성질은 변화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모든 CEO가 원하는 이상적인 방향이겠지만, 세상에 완벽히 똑같은 사람은 없기 때문에 말 그대로 이상적인 상황일 뿐이다. 따라서 회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조직이 지향하는 문화에 최대한 적합한 인재, 즉 기존의 질서를 지키고 무질서를 야기시키지 않을 최적의 인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사람을 예로 들기는 했지만, 사실 사람 외에도 어떤 비즈니스를 새로 하게 되는지, 일하는 공간을 어떻게 꾸미는지, 어떤 기술들을 새로 도입하고 사용하게 하는지, 인사제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지배구조와 조직구조를 어떻게 개편하는지 역시 모두 기존의 조직문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요소일 것이다. (아래에 계속해서 설명하는 다른 법칙들도 마찬가지이다.)
열역학 제1법칙에 빗대어 보면, 새로이 영입하는 인재의 성향에 따라 조직의 문화도 조금씩 변화해 간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그 사람이 가진 영향력에 따라 달라진다. 20도씨 물이 담긴 컵에 동일한 양의 40도씨의 물을 부을 경우, 그 컵의 물 온도는 30도씨가 된다. 하지만 동일한 양의 80도씨의 물을 부을 경우, 컵의 물 온도는 50도씨가 될 것이다.
따라서 위 열역학 제0법칙에서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조직문화의 질서를 최대한 지켜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구성원들과 최대한 유사한 문화적 성질(?)을 가진 인재를 찾아야 하는 것이고, 자칫 그 차이가 큰 사람을 직원으로 잘못 채용하게 되면, 그 실수가 조직문화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활용하는 사례로 물속에 떨어뜨린 잉크를 자주 소개한다. 잉크 방울을 물속에 떨어뜨리기 전에는 검정 잉크와 물은 전혀 별개의 물질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잉크 방울을 물속에 넣는 순간, 검은색 잉크 방울은 물속에서 무질서하게 번져나간다.
열역학 제2법칙은 위와 같은 상황에서 잉크 방울은 물속에서 무질서하게 퍼져나게 되고(엔트로피가 증가하게 되고), 자연적으로는 절대 잉크방울이 물과 독립된 상태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엔트로피가 감소하게 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즉 별도의 에너지가 가해지지 않으면 자연 상태 그대로에서는 질서를 찾아갈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외부에서 별도의 에너지가 가해져야 질서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 물과 섞여버린 잉크를 따로 분리해 내려면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조직문화라는 것은 직원 개개인이 모여, 즉 사람과 사람이 모여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함께 일하고 생활하며 만들어가는 암묵적 가정의 총체(참조 : 애드거 샤인의 조직문화 3단계 원칙)라 할 수 있다. 이 암묵적 가정은 완전한 자연 상태에서는 무질서하게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창업가나 조직을 이끄는 최고 경영자는 명확한 지향점과 철학을 바탕으로 조직이 원하는 질서의 방향을 알리고 확산하는 조치를 취하며, 그러한 인위적인 조치들에 영향을 받아 그 조직만의 문화(질서)를 점차 형성해 나아간다.
열역학 제2법칙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조직에서 문화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성이 있다면, 그 질서가 흐트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방향성을 지키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의 요소를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노력을 게을리하게 되면, 어느 순간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질서 상태에 놓이게 되고, 그 이후에 다시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에너지의 투입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완전한 질서의 상태인 절대 0도 '캘빈(K)'. 무질서가 없는 완전한 질서의 상태, 이상적인 상태이지만 절대 구현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태이기도 하다. 조직문화에서도 우리는 서로가 바라는 이상향이 있지만, 절대 그 이상적인 상황에 도달할 수는 없다. 그저 최대한 그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천할 뿐이다.
우리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라 해서, 어차피 도달하기 불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최대한 그 모습에 닮아가고자 애를 쓴다. 그리고 그 노력들이 모여, 우리가 속한 조직의 문화가 절대 0도에 최대한 가까이 가길 희망하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경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직문화는 우주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조직문화 역시 우주 안에서 만들어지는 무형의 존재인 것이고, 그래서 우주를 연구하는 학문인 물리학 법칙이 조직문화에서도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광활한 우주를 보면 항상 겸손해지고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만물의 섭리가 그 안에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비록 HR과 관련한 분야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에 조직문화와 관련된 시각으로 물리학 법칙을 바라보는 기회를 가져 보았지만,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면 더 다양한 아이디어와 시각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거의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내일...아니 오늘 아침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 타이틀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