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랑 둘이 산지 15년이다.
어릴 때는 옆에 꼭 붙어 있고 어딜 가도 같이 가고 어떤 계획이던 같이였다.
중3이 된 내 딸. 친구들한테 내 자리의 반을 내줬다.
처음엔 그 공허함에 뭘 해야 될지를 모르겠더라.
오늘 딸은 학원 마치고 친구랑 밥 먹고 온 댔다.
나는 퇴근하고 점심때 사둔 가을 옷을 찾아오고 스타벅스에 들러 별 10개를 쿠폰으로 바꿔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샌드위치를 먹고 휴대폰을 켰다. 주식창을 열어 보고 이번 달 수익을 보고 흐뭇하다. 월급보다 더 많이 벌었다. 유튜브로 안방 인테리어 쇼츠도 보고 홈카페 커피머신 사용하는 법도 찾아본다. 내일쯤이면 새로 산 초록색 이불이랑 작은 커피머신이 도착할 예정이다. 커피그라인더가 택배배송완료됐다는 문자가 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쓸려고 하는 나의 블로그에 최근에 다녀온 맛집 리뷰도 남겼고 바깥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쉬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15년 넘게 일했으니 아는 손님도 많고 친해져서 사적인 이야기도 가끔 나눈다.
그리고 오늘처럼 가끔 있는 일인데.. 손님이 물었다.
명절인데 시댁에 가? 집에 차례는 지내? 보통 이런 질문은 끊지 않으면 가족 관계로 넘어간다.
안 한다고 했는데.. 그럼 교회 다니나?..ㅎ 나는 졸지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 됐다..
거기서 그만했으면 좋았을 텐데.. 애는 몇 명이고? 왜 하나만 낳았어? 한 명 더 낳아~ 이 질문은 자주 받기 때문에 나이가 많아서 이제 못 낳는다고 답했다. 신랑은 뭐 하냐고 물어서 보통은 회사 다닌다고 답하지만.. 오늘은 질문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주 가끔 이럴 때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조금 작은 목소리로 '저 이혼해서 아이랑 둘이 살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대부분 따뜻함과 미안함의 눈빛을 보낸다.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거나 안타깝다고 이야기하거나 더 늦기 전에 남자를 만나라고 이야기하며 종료된다.
사실.. 나는 지금이 편하다.
남자친구가 있었던 적도 있다. 만나보니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은 같이 하는 삶보다 혼자인 삶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을 만난다는 건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맞추고 각자 자유의 반을 양보하는 일이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 만난 사람은 나도 너도 서로의 삶과 색깔이 분명했다. 나는 나의 자유를 선택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오늘 입은 옷을 세탁기 넣는다. 10년도 넘은 작은 세탁기는 아직도 쌩쌩하다. 둘이 사니 일주일에 두 번만 돌리면 된다. 세탁물을 돌리고 아파트 단지에 있는 헬스장으로 간다. 올여름 헬스장이 가장 시원했다..ㅎㅎ 헬스장에서 에어팟을 끼고 러닝머신을 뛰는데 음악을 듣거나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보거나 유튜브를 본다. 주식창도 열어놓고 미국주식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본다. 한 시간쯤 뛰고 나면 집에 와서 밥을 먹는데 나는 보통 한 그릇 음식으로 해 먹고 한우스테이크 한 덩이를 구워서 먹거나 좋아하는 초밥을 배민으로 시킨다. 여러 가지 반찬을 꺼내서 먹거나 저녁을 푸짐하게 먹지 않는다. 밥 먹고 나면 샤워를 하거나 욕조에 물을 받아서 반신욕을 한다. 읽으려고 사 둔 책을 보고 빔프로젝트로 드라마를 보거나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잠이 든다.
나의 하루는 단순하다. 아침에 눈뜨면 딸을 학교 데려다주고 회사 가서 일하고 마치면 집에 와서 운동하고 밥 먹고 씻고 잔다.
이런 내 삶도 좋은데
사람들은 왜 내가 혼자 산다면 측은해하는지 모르겠다.
가까운 이모마저도 내가 잘 살고 있댔지만.. 옆에서 보면 안 그렇다고 이야기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사실..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잘살고 있다고.. 잘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거나 알리는 순간 나를 비 맞은 새끼 강아지처럼 쳐다본다..
그래. 가끔 부러운 것도 있지.
카카오톡 메인이 바뀌었더라. 사진들이 대문짝만 하게 올라오던데. 친구들의 가족사진을 보면 부럽다.
엄마, 아빠, 딸, 아들. 이렇게 사진 한 장이 부럽다.
아이가 어릴 때는 동네 통닭집에서 한 테이블에 가족들이 모여 앉아서 닭 뜯는 것도 부러웠다.
나는 포장해 와서 아이랑 집에서 둘이서 먹었다.
가끔. 아주 가끔. 한 번씩 있다.
추석연휴 7일. 나는 시댁이 없기에 안 간다! 엄마, 아빠가 있는 친정집에 가서 엄마가 해주는 탕국 먹고 집에 갈 때는 엄마가 싸주는 튀김도 가지고 와야지.
뒤늦게서 여행 가보려고 찾았더니 2배가 넘는 티켓에 숙박비에 포기했고 친구가 추천해 준 그림페인팅 세트를 주문했다. 커피머신 오면 커피도 만들어보고 읽고 싶었던 책도 실컷 읽고 7 일내도록 푹 쉬려고 한다.
또 러닝머신도 뛰러 가야지..ㅎㅎ
여튼지간에 혼자 사는 삶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