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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

by 도담


아침에 출근하면 뜨거운 믹스커피로 속을 채운다.

믹스커피 한잔 들어가야 일을 시작하는 나만의 루틴.

따뜻한 차 한잔이 몸에 더 좋을 텐데

믹스커피 한잔이 빈속을 채우는 안정감과 포만감과 달콤함 때문에 노란 믹스커피를 집는다.

누군가 믹스커피를 끊고 나니 살이 빠졌다했는데,

그래서 내가 살이 안 빠지는 걸까?



점심 먹고 나면 아메리카노 한잔.

회사에 커피머신으로 내린 원두가 너무 쓰다.

물 가득 얼음 가득 넣어서 한잔 마신다.

싼 커피원두를 쟁여놔서 저걸 다 소진할 때까진 새로운 원두커피는 구경할 수 없다.

회사 커피로 충족되지 않는 점심시간엔 혼자 탈출! 은신처처럼 가는 1인 커피숍.

테이크아웃전문점인데 이 사장님의 커피숍에서 커피마신지도 10년이 넘는다.

맛있고 가격 저렴하고 점심시간 30분쯤 혼자 쉴 수 있는 최고의 장소와 커피를 제공했다.

10년 전쯤에 '커피 좀 가르쳐주세요.' 이야기했는데 수업은 하지 않는댔다.

아가씨였던 커피사장님은 결혼하고 늦은 오전에 문을 열고 오후 4시쯤이면 집에 갔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이었다. 내가 정신없이 출근하는 시간에 아파트입구에서 아이와 손을 잡고 서 있는 것을 몇 번 봤다. 노란 어린이집 버스를 향해서 손을 열심히 흔들어주던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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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주변에 커피숍을 한집, 두 집 다니면서 점심시간 풀충전하고 일하러 들어간다.

'커피를 배우고 싶은데. 나도 커피숍 해보고 싶은데.'

커피에 대한 나의 경력이라면 대학 때 두 달 정도 커피숍 아르바이트한 게 전부였고 어른이 되고는 커피숍 가는 게 너무 좋고 맛있는 커피를 먹게 되는 날이면 그 집에 혼자서도 자주 찾아갔다. 우연히 들른 커피체인점에 가끔 봤던 손님이 운영하는 것을 알게 됐고 몇 번가서 커피 마시면서 묻기도 했다. 아주머니도 커피숍이 너무 해보고 싶었는데 코로나시국에 다니던 여행사에서 퇴직하면서 차리게 됐노라, 이야기했다. 그분은 2년이 안 됐을 쯤에 커피숍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고 그만뒀었다. 커피를 배우고 운영해 본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내가 커피숍해보고 싶다면 주변에 백이면 백 다 말렸다.

오래전에도 같은 고민일 때 '스타벅스,커피한잔에 담긴 성공신화'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다.' 책부터 읽어봐!'



나도 알지 알지.

제일 많이 생겨나는 게 닭집 다음으로 커피숍인 것을.




이런 내 마음에 파도를 일으킨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다.

손님이었다. 경매로 원룸 건물을 샀댔다. 임대가 나간 집도 있고 나갈 집도 있고 그 꼭대기층에는 할아버지 부부가 살 거라고 했다. 경매로 원룸을 사다니 보통 할아버지가 아니구나. 원룸 쉽지 않을 텐데. 사실 이 동네는 오래전에 시내라고 불리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여들었던 동네였다.

지금은 빈 상가가 더 많고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시장을 끼고 있지만 오래된 원룸들은 가격을 다운시켜야 어쩌다가 사람이 들어올 수 있다. 방한칸 있는 나의 원룸도 몇 달 전에 사람이 나간 뒤 문의조차 없다.

두 달 뒤 찾아온 노부부는 커피체인점을 오픈했다. 작은 평수에 2층으로 올린 커피숍은 꽤 괜찮은 위치에 자리했다. 할아버지가 대단해 보였다. '저도 너무 커피숍이 하고 싶어요!' 속으로 외쳤다. 물론 할아버지가 직접 커피를 만들진 않는댔다. 젊은 직원들로 채용한 상태라고 했다. '할아버지, 너무 대단해요' 얼마나 준비하신 건지 모르지만 세상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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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품고 살기엔 나중에 너무 후회할 것 같아서 커피학원에 가서 배워보자고 찾아봤다.


커피사장님이 친절하다는 리뷰보고 들른 커피숍. 1층에 커피숍, 같은 건물에 커피학원이 있었다.

3번쯤 갔을 때 커피 배우고 싶은데 여기 학원에 문의해야 돼요?라고 물었더니 학원선생님이 외부강의를 갔다며 명함을 한 장 주며 연락해 보랬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커피 기본 과정 50만 원 정도, 커피창업반은 100만 원. 기본반은 국비지원은 안 하고 한 달 주 3회 저녁에 7시부터 9시까지 수업한다고 한다. 창업반은 따로 스케줄을 잡아보자 했다. 전화 한 통화에 그래도 뭔가 진행된 기분이다. 다시 전화드릴게요-라고 이야기하고 끊었다.

'숨고'에 접속했다. 세상에 숨어있는 커피 고수들의 알림이 왔다. 당황스러웠다. 내 동네 아닌 다른 동네의 고수들의 알림을 받았다. 이건 내가 생각한 게 아닌데 패스.

또 다른 곳에 카톡을 남겼다. 몇 달 전에 찾아보다가 번호만 저장해 뒀던 커피집. 이 동네에 오랫동안 해온 유명한 커피숍. 사장님이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홈페이지에는 저비용으로 창업가능하다며 연락 달라는 멘트가 있었다. 오후 5시에 전화를 했고 사장님의 커피에 대한 진심에 한 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창업비용 400만 원. 사실 사장님과 통화하며 정말 다 때려치우고 커피창업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정도로 확신을 줬다. 전화를 끊고 가슴이 두근두근. 볼이 빨개졌다.


그래서 내가 당장 4백만 원을 결재하고 달려갔냐고?

사실 주말에 뛰어갈뻔했다. 10시 오픈이니 점심시간 전인 11시쯤에 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인사라도 드려야지 했다. 전날 늦게까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면 잤는데 다음날 늦잠을 잤고, 오후에는 갤럭시워치를 처음 써 본 아버지한테 가서 가르쳐드렸다. 저녁에는 1년 동안 서울에서 커피를 배웠던 친구를 만났다. "커피시장은 포화상태야, 4백만 원 오~노! 내가 가르쳐줄게. 지금은 하던 일해. 나중에 하자."

오후에는 헬스장에 가서 러닝을 한 시간쯤 뛰고 저녁엔 사뒀던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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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 접었냐고? 집에 작은 커피머신을 들였다.

원두그라인더도 샀고 스타벅스원두와 우유를 샀다. 귀여운 에스프레소 잔도 두 개 샀다.

거실에 커피 향이 퍼졌고 첫 잔은 밍밍했다. 왜? 더 곱게 갈아야 하고 더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유튜브 선생님이 가르쳐줬다. 둘째 잔은 제법 찐했고 우유스팀은 대학 때 두 달 배웠던 기술이 자연스럽게 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때처럼 수건으로 스팀청소도 했다. 둘째 잔 에스프레소는 진한데 우유를 넣으니 밍밍했다.

유튜브를 본다. 오늘 세 번째 잔 어제보다 낫다. 얼음도 넣어서 아이스라테를 먹었다.

11월엔 평생교육원에 커피 수업을 들을 거다. 커피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만나니 더 즐거울 것 같다.

천천히 배워보려고.


사실 내가 하고 싶은게 커피숍이 아니라, 나는 새로운 것이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 관심 있는 거 천천히 하나씩 해보자. 또 다른 세상에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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