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 날에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헬스장에 갔다.
헬스장에 불은 켜져 있는 것 같은데 입구에 불이 꺼져있다.
'뭐지? 안 켰나?'
헬스장 들어 서면 나는 뜨뜻한 땀냄새가 안 나고 상쾌한 에어컨 냄새가 난다.
평소랑 다르다.
입구에 아저씨 한 명이 아령을 들고 서 있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다.
헬스장에 그 아저씨 혼자였다.
나까지 포함하면 이제 2명.
'아싸! 좋았어! 사람 없다! 오예!'
러닝머신 10 대중에 3대가 고장이 났었다.
새로 지어진 지 1년 넘은 새 아파트였는데 러닝머신 10대 중에 3대가 고장이라는 건
무지막지하게 탄다는 거. 또는 기계가 구리거나?
여기 저녁 시간에 오면 꽉 찼다. 러닝머신은 설 틈이 없고, 근력기구도 아줌마 아저씨들이 차지하고 있다. 덕분에 에어컨은 켜져 있으나 사람들의 열기에 큰 선풍기가 2대가 돌아가고 땀내새는 공간에 빙빙 돌았다.
큰 선풍기 2대 이야기하니 생각나는 게 있다.
지난달 그 더운 땡볕 여름날. 전단지와 왕부채사은품을 종이박스에 가득 넣고 영업하러 나갔다.
참고로 나는 은행직원이다. 예금계 직원. 손님들 오면 '어서 오세요~' 하고 예금받는 직원이나 박스에 전단지와 왕부채를 들고 파크골프장에 서있다.
이 여름에 누가 운동하나 싶지? 가득 찼다. 족히 200명은 된다. 믿기지 않지. 사진을 보여줄 수도 없고. 나도 보기 전엔 몇 명이나 있겠냐며 박스에 몇 장 챙기지 않은 전단지와 부채가 금방 소진됐다.
그 다음번에 나갈 때는 두 박스 들고나갔다. 전단지엔 관심 없고 나한테도 관심 없고 그냥 왕부채를 반겼다.
거긴 에어컨 바람도 없지 실외니까. 근데 큰 선풍기 2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근데 그 선풍기를 한 테이블에서 몽땅 차지하고 있었다. 이 더위에 왕부채 부친들 뭐 시원하겠어 내가 봐도 아슬아슬했다.
"저기요, 거기 선풍기를 2개 다 그쪽으로 켜고 있으면 어쩝니까?" 아줌마 한 명이 외쳤다. 대한민국 아줌마는 강하다. 나도 똑똑히 들었는데 테이블에 있던 중년보다 조금 더 나이 든 남자, 여자분들이 들었을 텐데 반응이 없다. "아니, 저기요! " 안 돌아본다. 아줌마도 그냥 말았다. 은행 이름이 적힌 부채만 연신부쳐댔다. 더위를 이길 장사가 없다. 그래도 좀 너무하지 싶었다.
여튼지간에 큰 선풍기를 보니 그때 생각이 잠깐 났다. 내가 그 여름에. 그 땡볕에. 그 고생에. 큰 선풍기.
추석전날이라서 다들 추석 보내러 갔나 보다.
가족끼리 여행도 가고 도란도란 모여 앉아서 이야기 나누고 하겠지.
나는 명절이라고 해서 다른 주말과 다르지 않다. 친정도 코앞이고 내일 아침에 가서 엄마밥 먹고 와야지.
나는 달릴려고 헬스장에 왔다. 다이어트 중이다.
365일 다이어트 중. 고등학교 때도 나는 다이어트 중이었고 대학 때도 마찬가지고 직장인이 돼서도. 엄마가 돼서도 다이어트하고 있다. 말만 다이어튼가. 살이 빠지지 않는다. 사실 2년 전에 마음고생했을 때 살이 기하급수적으로 빠졌다. 자고 일어나면 빠져있고 화장실로 뛰어가고 나는 그때 몸이 고장 났었다. 병원에 건강검진해도 나오지 않지만 정신과에서 알게 된 마음의 병.
여하튼 나는 다이어트 약을 구하기 위해서 수소문했다.
'세상에 정신병원에서 알약을 처방해 준다고?' 너무너무 유명하단다. 그 병원이. 살이 쏙쏙 빠진단다.
한참을 기다려 내 차례가 돼서 들어갔다.
진짜 작은 방에 의사 선생님이 책상에 앉아있다. 나보다 더 힘이 없어 뵌다.
"어떻게 오셨어요?"
"살이 쪄서요 살을 빼고 싶어서 다이어트 약 지으러 왔어요"
의사 선생님이 왜 살이 빠지지 않는 것 같냐고 물었다.
"많이 먹는 것은 아니지만 움직임이 적고 운동도 안 하고 밥보다 간식, 군것질거리 좋아하고 그래서 살이 찌는 것 같아요!"
답을 잘 알고 있는데 약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신박한 의사 선생님.
덧붙여서 이야기했다.
자기는 매일 앉아서 일을 하고 있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까지.
"나는 살기 위해서 스쿼트를 합니다."
매일 제자리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몇 회 했는지 적혀 있는 종이를 보여줬다.
"운동해야 됩니다." 약은 처방 해주겠으나 운동해야 하고 부작용이 느껴지면 중단하라고 했다.
나는 알약을 처방받고 복용했으나 두근거림이 심해서 중단했다. 의사 선생님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 그 장소에 살기 위해서 제자리에서 스쿼트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은 또렷이 기억난다.
러닝머신을 뛸 때면 그 의사 선생님의 말이 들리는 듯했다.
살기 위해서 뛰자! 1시간이 안되면 30분만이라도 뛰어!
저녁밥을 먹고 8시쯤 헬스장에 들어섰다.
3대를 아직 안 고쳤고 역시 자리가 없다.
자전거 다리 젓기를 30분 정도하고 토스증권에서 온 알림을 확인했다.
'서브로보틱스' 10% 상승 알림. 음식배달 플랫폼에서 배달로봇을 이용하겠다는 뉴스였다.
로봇이 배달을 하다니? 얼마 전에 결성된 재테크방 톡방에 남겼다.
잠깐사이에 러닝머신에 2명만 남고 다 비워졌다.
내일을 준비하러 집으로 간 것 같다.
나는 조금 더 뛰고 가야지. 러닝 머신 뛰는 시간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하면 1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지난주 구입한 가을치마가 생각난다.
연휴 동안에 엉덩이를 반쪽을 만들겠다며 샀으나 실패한 것 같다.조금 더 뛰어야지, 반쪽은 아니더라도 1/3은 떨어져 나가게 ㅋㅋ
저녁시간! 오롯이 나를 위한 뜀박질!
의사선생님도 살기위해서 스쿼트 하는데 난 뭐라고 누있노? 일어나서 뛰자 ~ 뛰면 살은 빠질거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