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사랑한 여성들의 이야기
희끗희끗한 곱슬머리에 구슬 목걸이를 한 나이 지긋한 여성이 책상 앞에 앉아 있다. 그는 비스듬히 기울어있는 유리판 위에 확대경으로 보이는 도구를 놓고선 그 안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무얼 하는 걸까? 확대경을 들고 있는 걸 보니 눈이 좋지 않은 게 아닐까? 보석을 감정하거나 위조지폐를 감별하는 사람일까? 아쉽지만 추측은 모두 정답을 빗나갔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 여성의 정체는 바로 천문학자다.
천문학자가 하는 일은 천체 망원경을 보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천문학자가 망원경으로 별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천문학자는 망원경보다 컴퓨터와 더 친하다). 천문학자와 망원경이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인 건 맞지만, 망원경의 렌즈로 볼 수 있는 건 단지 천체의 겉모습일 뿐이다. 천체의 겉모습에 만족할 수 없던 천문학자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 열쇠를 찾아냈다.
그 열쇠는 ‘빛을 보는 방식’에 있었다. 프리즘이라 부르는 유리 기둥을 통과한 햇빛은 무지개가 된다. 왜 그럴까? 빛이 프리즘을 지날 때 에너지에 따라 굴절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강한 푸른빛은 많이 꺾이고, 에너지가 약한 붉은빛은 덜 꺾여서 무지개로 쪼개진다. 프리즘처럼 빛을 쪼개는 도구를 ‘분광기’, 분광기로 얻은 무지개를 ‘스펙트럼’이라고 부른다. 이 스펙트럼을 분석하여 천체의 정체를 밝혀내는 학문을 ‘분광학’이라 부른다.
지금은 관측 기기들의 성능이 높아졌고, 그간 쌓아온 별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많기에, 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빠르게 알아낼 수 있다. 스펙트럼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분석’ 버튼만 딸깍하고 누르면 별의 온도가 대략 몇 도인지,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맨눈으로 스펙트럼을 보고, 별을 분류하여 분류법까지 만들어낸 사람이 있다. 그게 누구냐고? 책상 앞에 앉아 확대경을 들고 있던 이를 아직 기억하는가. 그가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엄마! 저 별인 것 같아요!"
"그래. 저 별과 그 옆에 있는 별을 이은 별자리가 바로…."
애니 점프 캐넌은 어둠이 찾아오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락으로 올라갔다. 별을 보기 위해서였다. 캐넌과 어머니는 일렁이는 촛불 옆에 낡은 천문학 교과서를 펴놓고 하늘을 보며 별과 별자리를 찾았다. 어머니는 캐넌에게 우주의 존재를 알려준 최초의 천문학 선생님이었다. 그 시절 천문학과 물리학, 수학은 여성에게 어울리는 학문이 아니었다. 그런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도 어머니는 캐넌이 과학과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응원했다. 캐넌은 어렸을 적부터 수학과 과학에 재능이 있었지만, 그의 부모는 그들의 귀여운 딸이 21세기의 천문학 전공서에 실릴 만큼 위대한 업적을 세울 거라고는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8살의 캐넌은 미국 최고의 여자 대학 중 하나인 ‘웰즐리 칼리지’에 입학하여 바라보기만 했던 별을 향해 걸어가 보기로 한다.
캐넌이 입학하기 5년 전, 사라 프랜시스 휘팅이라는 여성은 웰즐리 칼리지에 설립될 물리학부를 맡게 되었다. 웰즐리 칼리지에서는 실험을 통해 물리를 가르칠 예정이었다. 이미 MIT에서 같은 교육 방식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휘팅은 일주일에 네 번 MIT로 찾아가 수업을 청강했다. 덕분에 분광학과 같은 새로운 천문학 기술도 익힐 수 있었다. 휘팅은 물리 실험실에 필요한 실험 기구도 준비해야 했다. 주변 대학을 찾아가 필요한 도구를 하나하나 조사하고 기구를 사들였다. 5년간의 고생 끝에 웰즐리 칼리지에 미국 최초로 여성이 가르치는, 여성을 위한 물리 실험실이 탄생했다. 여성은 수준 높은 과학 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만연하던 시대에서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휘팅은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선생이었다. 웰즐리 칼리지가 보유한 망원경은 고작 한 대였지만, 휘팅은 모든 학생이 천체를 관측할 기회를 주려 했다. 특별한 천문 현상이 있을 때마다 발코니에서 학생들과 관측하고 현상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휘팅이 MIT에서 분광학을 익힌 덕분에 학생들 또한 천문학의 신기술을 배울 수 있었는데, 캐넌 또한 분광학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된다. 캐넌이 휘팅을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캐넌은 휘팅에게서 학문에 대한 열정을 배웠다. 휘팅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흥미를 느낀 일을 계속하도록 격려했고, 좋은 학자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캐넌은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졸업생 대표였을 만큼 재능이 많았지만, 고향에서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일은 과외 선생이 되는 것뿐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좋지 않았던 귀는 어느덧 기능을 상실했고, 야속하게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첫 천문학 선생님이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집안 형편은 어려워졌고 캐넌은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나있었다. 재능이 넘치고 반짝이던 대학 시절의 기억은 이미 흐릿해진 지 오래였다.
다행히 옛 스승 휘팅의 수업 조교로 일할 수 있게 된 캐넌은 웰즐리 칼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래드클리프 칼리지에서 천문학 석사 학위 과정을 밟았다. 래드클리프 칼리지는 하버드 대학과 가까워서 하버드 대학의 교수들이 수업하기도 했는데, 그 덕분에 캐넌은 하버드 대학 천문대의 연구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됐다. 하버드 천문대에서는 전 하늘의 별들을 조사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워낙 많은 양의 자료를 다루는 일이라, 하버드 천문대에서는 상대적으로 임금이 적은 여성들을 많이 고용했다. 당시 여성들은 재능이 있어도 독립적인 학자가 될 수 없었고 망원경을 만질 수도 없었으며, 남성 천문학자들의 조수가 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밤에 남성 직원들이 프리즘이 부착된 망원경으로 별을 촬영하면, 낮에 여성 직원들이 스펙트럼을 분석했다.
스펙트럼을 확대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리카락처럼 얇은 검은 실선들이 수직으로 그어져 있는데, 이 선을 ‘흡수선’이라고 부른다. 흡수선은 별의 대기에 있던 원소들이 별 내부에서 나오는 빛 일부를 흡수하여 생긴다. 모든 원소는 각각 흡수하고 방출하는 에너지의 양이 정해져 있어 스펙트럼에 고유한 패턴을 남긴다. 간단한 이야기로 예를 들어보겠다. A, B, C라는 세 사람이 있다. A는 새우 초밥만 먹고, B는 연어 초밥만 먹으며, C는 계란 초밥만 먹는다. 다른 것은 일절 먹지 않는다. 세 친구는 항상 모둠 초밥 한 접시를 시켜 각자 좋아하는 초밥만 쏙쏙 골라 먹는다. 어느 날 세 명은 모둠 초밥 한 접시를 시켜 먹었다. C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들의 친구가 식당을 지나가다가 그들을 발견하고는 모둠 초밥 접시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C도 왔구나!”
친구는 C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바로 모둠 초밥 접시에 C만 먹는 계란 초밥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둠 초밥을 별이 내놓는 빛이라고 생각해보자. 별에서 나온 빛은 별의 대기에서 특정 에너지의 빛만 쏙쏙 골라 먹는 원소들을 만나게 된다. 원소들에 빛을 빼앗기고 나면 까만 선들이 그어진 스펙트럼이 완성되는 것이다. A, B, C가 좋아하는 초밥만 먹고 남은 모둠 초밥 접시처럼 말이다. 천문학자들은 A, B, C의 친구처럼 스펙트럼에서 빠져있는 빛, 즉 흡수선을 보고서 별의 주변에 어떤 원소들이 있는지 추측할 수 있다.
캐넌을 비롯한 하버드 천문대의 몇몇 여성 직원들은 스펙트럼을 분석하여 비슷한 스펙트럼을 가진 별끼리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스펙트럼 위에 검은 선은 무수히 많은데 무엇을 기준으로 별을 분류하면 좋을까? 캐넌은 ‘수소 발머선’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별을 분류하기로 했다. 발머선은 수소의 전자가 들뜬상태에서 양자수 n=2로 전이되면서 에너지를 방출하며 만드는 4개의 선이다. 반대로, 별의 대기에 있던 수소 전자는 같은 양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4개의 검은 선을 만든다. 이 4개의 흡수선은 별에 따라 진한 정도가 다른데, 캐넌은 확대경으로 스펙트럼을 꼼꼼히 관찰하여 발머선의 진한 정도에 따라 별을 분류했다. 그런데 사람의 눈으로 그 정도를 측정하는 게 과연 정확할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캐넌의 이름이 기억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캐넌은 기억력이 매우 좋았고 매의 눈을 가져서, 발머선의 진한 정도를 정확히, 게다가 빠르게 구별해냈다! 스펙트럼에 그어진 수많은 흡수선을 쓱 훑은 뒤, 별을 분류하는 데 채 20초가 걸리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이자 당시 하버드 대학 천문대장이었던 에드워드 피커링은 ‘이 일을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사람’이라며 캐넌을 극찬했다. 그러나 캐넌도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었다. 그도 처음에는 1,000개의 별을 분류하는 데 3년이 걸렸다. 천부적인 재능이 꽃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의 꾸준함 덕분이었다.
캐넌은 비슷한 스펙트럼을 가진 별들을 묶어 그룹을 만들었다. 발머선이 아주 진한 별은 A형, 좀 더 연한 별은 B형, 매우 옅은 별은 M형... 수소 발머선을 택한 판단은 신의 한 수였다. 발머선의 세기가 별의 온도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별 온도에 따라 순서는 O, B, A, F, G, K, M으로 재배열되었고, 이것을 ‘하버드 항성 분류법’이라고 부른다. 여전히 천문학과에서는 이 분류법을 배우고, 별을 구분하는 데 쓰고 있다. 4년 동안 분석한 225,300개의 별에 대한 결과는 9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가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결과는 천문학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하버드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캐넌은 45년간 35만 개 이상의 별을 분류했다. 어찌 보면 굉장히 지루해 보이는 스펙트럼 분석. 캐넌은 어떻게 이 일을 45년씩이나 할 수 있었을까. “힘든 시기에는, 지구 밖의 작고 멀리 떨어진 무언가에서 평안을 찾아보세요.” 그가 1차 세계 대전에 대해 언급한 말이지만, 우리가 찾는 답의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턱없이 적은 급여를 받으며 자신의 재능을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써야 하는 불공평한 세상에서, 확대경을 들고 별의 스펙트럼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야말로 평안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사진 속 그는 스펙트럼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캐넌은 ‘여성 최초’의 타이틀을 여러 번 거머쥐며 ‘여성도 천문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헨리 드레이퍼 메달은 천문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천문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캐넌은 수십만 개의 별의 스펙트럼을 분류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성 최초로 메달을 받게 되었다. 캐넌 이전에 메달을 받은 남성 천문학자는 고작 20명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 최초로 옥스퍼드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천문학 협회와 유럽 왕립 천문학회의 첫 여성 회원이 되었다. 달의 크레이터(Cannon)와 소행성(1120 Cannonia)에 캐넌의 이름이 붙여졌다.
캐넌은 자신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를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았다. 재능은 있지만, 빛을 보지 못하는 여성 천문학자들을 위하여 ‘애니 점프 캐넌 상’을 만든 것이다. 1934년부터 천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한 미국의 여성 천문학자들을 선정하여 상금을 수여하고 대형 학회에서 자신의 연구를 발표할 기회를 주고 있다. 여성 천문학자라는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연 캐넌. 남성 천문학자들의 조수에 만족해야 했던 여성들은 캐넌이 연 문으로 들어가 비로소 한 명의 천문학자로 태어날 수 있었다. 캐넌은 1941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열정은 후배들을 통하여 계속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