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이사 온 이곳은 전에 살던 곳 보다 한적하고 가로수나 공원이 많다. 이사하기 전에도 집 근처에 공원이 있어서 자주 걷곤 했는데 한 바퀴를 도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아서 운동이라도 할라치면 계속 같은 풍경을 봐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귀를 찌르는 듯한 왕복 6차선 도로 옆 인도를 걸어야 했다. 귀가 예민한 나에게 걷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이사한 곳 근처에는 공원은 없지만 아파트 단지 사이가 걷기 좋게 조성됐다. 길 가운데엔 중간중간 벤치가 있어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쉴 수도 있고, 가운데 길 옆으로는 자전거 도로가 있다. 그리고 그 너머엔 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아파트 단지 사이 치고는 삭막하지 않은 풍경이다. 나는 이 길을 따라서 걸으며 초등학교 두 개, 중학교 하나, 고등학교 하나를 지나고 두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며 세 개의 크고 작은 공원을 지난다. 여기까지 걷다 집으로 돌아오면 4킬로미터 정도가 된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지만 나는 이 길 위에서 연한 이파리 사이로 비추는 햇살과, 밤에 더 아름다운 배롱 다리 꽃과, 나무에 붙어 맹렬히 울다가 서늘한 바람 타고 나무에서 떨어져 배를 보이던 매미들과, 붉게 익어가는 정체 모를 열매들과, 수북이 쌓였다가 다음 날 감쪽같이 사라진 낙엽들을 보았다. 뭘 많이 먹어 소화가 되지 않을 때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하루에 3천 보도 걷지 않아 놀랐을 때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가도 평생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고 싶은 이가 있을 때도, 어제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으니까 오늘은 쉬엄쉬엄 운동하고 싶을 때도, 인생의 짧은 계획을 짤 때도 다 이 길 위에 있었다. 걷는 게 너무 좋아서가 아니라 몸이 멈춰있으면 머리도 멈춰버리는 사람이라서 그랬다.
이 도시에는 나 말고도 이 거리를 즐기는 이들이 많다. 가족이나 친구와 배드민턴을 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의자 그네에 앉아 수다를 떤다. 아이들끼리 놀게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젊은 엄마들도 있다. 아마 그들은 나보다 살짝 나이가 많거나, 나랑 동갑이거나, 어쩌면 나보다 어릴 수도 있다. 나는 이제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다. 나와 그들은 비슷한 나이대지만 나는 그들 사이에 낄 수 없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출산과 육아의 고통에서부터 시작해서 요즘 아이들은 뭘 배우는지, 뭐가 필요한지, 뭐가 문제인지 그런 걸 얘기하겠지. 대화에 낄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쉽게 공감할 수 없고 함부로 위로할 수 없어서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다 거리를 걷는 사람을 보며 공상에 빠지고 말 것이다.
좀 더 걸으면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나는 밤눈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일단 개처럼 생긴 것이 보이면 마스크 안에서 미소를 짓는다. 세상에 개처럼 조건 없이 인간을 사랑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개는 뭘 해도 귀엽지만 가장 귀여운 장면은 모르는 개들이 만나 서로 코를 갖다 대고 킁킁대는 장면이다. 지난번에는 비숑 서너 마리가 모여 서로의 냄새를 맡는 모습을 보았는데, 사람들도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주위에 서서 개들의 대화합을 지켜보고 있었다. 견주들은 개들이 서로를 반가워하는 동안에 스몰 톡도 나누고 동네 친구도 되는 모양이었다. 동네 어플에서도 '같이 개 산책시키실 분' 등의 글을 자주 봤다. 나도 이번에 이사하면서 반려 동물을 키워보려고 유기 동물 입양 어플도 깔아봤지만 얼마 되지 않아 포기했다. 내가 집에 없을 동안 반려 동물에게 닥칠 외로움이 보였다. 외로운 존재는 나로도 충분하지 않겠어, 라며 어플을 삭제했다.
아기 엄마도 아니고 견주도 아닌 나는 그냥 혼자 사는 여자여서 결국 혼자 길을 걷는다. 둘 다 아니더라도 쉽게 사람을 사귀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는 새 친구를 사귀는데 재능이 있는 타입이 아니다. 게다가 아는 사람과 친구, 그리고 친한 친구 사이의 경계가 높아서, 그 경계를 뛰어넘어 친한 친구가 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친한 친구들과의 물리적 거리는 더 멀어졌고. 그러니 혼자 걸을 수밖에. 아기 엄마와 견주라는, 쉽사리 들어갈 수 없으며 들어가면 함부로 나올 수 없는 빽빽한 숲 사이에 놓인 좁은 길을 걷는다. 오직 내 발소리와 마스크 사이로 새어 나오는 숨소리를 들으며, 그 둘 중 하나(혹은 둘 다)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날이 나에게도 오려나 가볍게 의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