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후부터 머리가 아파서 회사에 남아있던 애드빌 한 알을 먹었다.
보통은 한 알 먹고 어느 순간부터 두통이 사라지는데 어제는 먹고서도 한참동안 두통이 있었다.
어젠 할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업무적으로 통화도, 내부적인 협의도 거쳐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떡볶이도 먹고 이것저것 먹고 8시반에 바로 잠들었다.
다음날인 오늘 12시간 가량 잤다가 일어나서 남편과 아침을 먹고 산책을 했다.
꽃가루가 여전히 휘날리는 봄날이다. 날이 은근 쌀쌀했다.
커피 한 잔씩 사들고 산책을 1시간 좀 넘게 하고와선 빨래 하고 청소기 돌리고 집안 정리를 했다.
남편은 화장실청소도 했다.
집이 깔끔해지고나서 우리는 문래에 스텀프커피에 가서 커피도 한 잔씩 하고 돌아오는 길에 과일이랑 꽈배기를 사왔다.
집에 와선 광어회, 라면, 꽈배기로 배터지게 밥을 먹었고 다 먹고나니 2시였다.
너무 배가 불러서 나는 나가서 혼자 똑같은 산책로를 걸었다.
한동안 안보이던 토끼 투투(내가 이름까지 지어줬다.)가 보여서 한참을 구경하다 왔다.
투투는 건강해보였다. 3~4주만에 보는 투투였는데 풀도 잘 뜯어먹는게 아주 예뻤다.
혼자 걷고 돌아오니 남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5000보 정도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다.
토요일은 최고다. 항상.
매시간을 양껏 놀면서 보내는 중이다.
체력만 되면 또 걷고 싶은 날씨다. 그냥 샛강 길을 걷는게 지금 내 인생의 최고의 행복 중 하나다.
딱히 그 외에 필요한게 없다. 이미 충만하다.
충만하다고 느끼는게 너무나도 고맙다.
항상 무언가 내 인생에 빠져있다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게 바로 지속성 없는 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얼른 결혼이란 것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 스스로 마지노선을 정했던게 28살이었다.
그런데 28살엔 다른 해에 비해 더더욱 남자친구랄만한 인물이 딱히 없었을 뿐더러 그 해엔 내 인생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다음해에 만난 남자친구는 나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그는 내 짝은 아니었다.
그 후에 만난 남자가 내 남편이 되었고 이 사람과 많은 투닥거림이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공허하거나 무언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결혼이 주는 안정감과 남편이 주는 사랑이 지속성 있고 이 관계가 지속가능한 것이어서 그럴 것이다.
결혼까지 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는 평탄하게 잘 지낸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회사에서도 내 일에 대한 자신감이 붙고 좀 더 집중해서 열심히, 그리고 즐기면서 일을 한다.
예전에 그랬었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죽지못해 일을 했던 나날도 분명히 있었다.
하루 하루 충실하게 사는 법을 드디어 터득한 것 같다.
그리고 충만한 삶이 무엇인지,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예전엔 항상 미래의 무언가를 기대하며 현실에서의 행복과 충만은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갔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재가 매우 소중하고 미래는 나중이다.
현재의 나 자신이 충만하다 느끼지 못하면 미래의 무언가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님 집에서 살 때는 좋아하는 산책을 하기 위해 항상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의 거리에서 내렸다.
그 산책길은 사실 산책길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차도 많이 다니고 밤에는 특히 좀 무서울 정도로 외진 길이었다.
그 길을 택한 이유는 조금만 걸어가면 사람이 적고 한적하고 나무가 울창한 곳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에 나무와 풀과 산, 꽃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내가 토끼인지, 뭔지 모르겠다만 하여간 자연을 가까이에 두어야 행복에 근접해진다.
그렇게 어렵사리 자연을 찾아 매일 길을 떠났던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마음만 먹으면 밥 먹고 옷만 입고 바로 나가서 자연에서 걸어다닐 수 있다.
물이 흐르고 왜가리가 서있고 오리가 강물 위에 둥둥 떠 있고 숲이라 할만큼 풀이 우거진 곳.
내일은 망원동에 있는 텐동집에서 점심 먹고 까페도 갔다가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영화를 볼 예정이다.
프랑스 감독 작품을 볼 예정이다.
열심히 놀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