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별일 없이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 아침 눈을 떴는데 몸이 정말 힘들었다.
준비를 하고 늦을까봐 부랴부랴 지하철을 탔다.
사람은 언제나 가득하고 에어컨을 튼건지 만건지 차 안은 덥다. 항상.
참아낸다. 가는 시간을 참아내고 회사에 도착한다.
그 사이 나는 남편에게 몇가지 문제점을 문자로 넣어뒀다. 전화 붙들고 아침부터 싸울 용기, 체력은 전혀 없다.
그리고 나서 어제 시킨 일을 했다.
아침에 요거트에 넣어먹은 블루베리가 이에 낀 듯 성가시다. 아침부터 회사에서 양치를 한다.
거울을 봤는데 나는 부쩍 슬퍼보인다.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의 얼굴 같다.
딱히 불행은 없는 나날이다. 그런데 내 얼굴은 퉁퉁 부어 올라 눈은 본래 크기에 1/2이 되어 있다.
마음 같으면 산 속에 숨어들고싶다.
매일 같이 이름 모를 사람들과 혹여나 몸을 부딪힐까 몸을 잔뜩 웅크린채 회사에 오는 일도 지친다.
지옥 같은 여름을 피하고싶다.
나는 어제 남편에게 안락사가 가능한 스위스에 보내달라고 했다.
남편은 운전 중에 전화하다가 그 소리를 듣고 신호를 놓쳤다고 한다. 그는 오래 살고 싶어하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나는 지금도 안락사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
매일을 힘들게 목표를 위해, 희망을 갖고 살아간게 벌써 32년째다.
힘들어도 굴하지않고 일어서서 여기까지 왔는데
남은 것은 저질 체력에 몸뚱아리에, 지긋지긋한 삶이다.
이 일마저 안하면 더 우울해질 것을 알아서 이 일에 목매는 불쌍한 삶인 것이다.
친정집에선 내가 이런 얘길 할때마다 그럼 누구는 그렇게 행복하게 사니? 라고 했었다.
나는 행복을 바라는게 아니다.
그래도 살 이유가 있으면 좋겠어서 말하는 것이다.
내 회사 책상 위에는 대표님이 전 직원에게 선물한 <왜 일하는가>란 책이 놓여져 있다.
나는 왜 일하는가.
나는 내가 살기위해 일한다.
돈이 아니라, 일이란 것을 해야 그나마 삶이 거지같은 것을 잊어버리고 시간을 지울 수 있어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