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by Minnesota

길고 긴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찾아왔다.


정확하게 7월 1일부터 장마가 종료된 것이다.


이번주는 일이 많았고 지쳤고 자주 폭발할 것 같았고 그래서 위태로웠다.


누군가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했으나 그러기에 그 누군가도 그 만의 사유로 힘든 것이다.


글을 쓰고 싶어 브런치에 들러 다른 사람들의 글을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결국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평소같으면 핸드폰으로 대충 휘적이고 말 글인데 오늘은 그러고싶지가 않은 상태다.


어제는 오랜만에, 거의 반년만에 만난 학교 선배랑 점심을 먹었다.


논문 통과했다며 내가 연락해서 잡은 자리였다.


회사 앞 한식집을 미리 예약해두었고 내가 살 참이었다.


선배는 자연스레 카스 한병을 같이 주문하셨고 나도 자연스레 술을 먹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전날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고 주변인들과 오지게도 싸웠으며 그러고서 다시 회사에 와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일을 하며 오전을 보냈기 때문이다. 나도 술이 필요했다.


카스 한병으론 역부족이었다. 논문을 쓰는 기간에 나는 선배에게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았다.


그 선배는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하자 바로 대학원 입학을 권유한 사람이다.


묻는 말에 대답도 하고 현재의 고민에 대해 잠시 털어놓기도 했다.

구구절절히 말하기엔 전날과 그날 오전의 여파로 힘이 없어 간략하게만 말을 이어갔다.


마지막 직함이 무엇이길 원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하더라.

내가 생각하는 마지막 직함과 현실적으로 가능한 직함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렇게 카스 세병과 함께 1시간 간의 조우를 마치고 요새는 드럼을 치고 목공을 꾸준히 배운다는 선배와 헤어졌다.


나는 아무런 취미도 없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여전히.


그렇게 오후에 일을 하고 3시반에 퇴근해서 집에왔으나 남편과 7시 넘어서까지 다시 싸움을 이어갔다.

무의미한 소모전이었다.


극적으로 화해는 했으나 사실 내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 나의 절망감의 주요 원인은 남편과의 싸움이 아니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일본 맥주 네캔을 사왔고 화해의 의미로 한잔하기로 하며 맥주캔을 땄다.


나는 이곳저곳에 내 답답함을 토로했다.

맥주는 1캔 반만 먹고 끝났다. 어느 순간 스르륵 잠들었고 중간 중간 깼다.


8시에 일어났고 남편과 산책을 다녀와서 집안 정리를 했다.


일주일 간 아무도 집에 신경쓰지 않은 터라 더러웠다. 극도로.


청소기를 돌리고 남편은 마대로 닦았다. 빨래를 했다.


아침을 먹고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기 전까지 시간을 때우는 중인데,

머리 속에는 여전히 잡다한 생각이 맴돈다.


나는 그 선배마냥 방통대에 들어가 새로운 전공을 택해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한테 적극 권유하셨다.)


그리고 드럼을 치고 목공을 배울 생각도 전혀 없다.


지금의 나는 다시 무언가에 골몰해야하는데 아무것도 없어져 괜스레 쓸데없는 회사에 신경을 쓰는 중이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온몸이 쑤신다. 스트레스를 하도 받아서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어깨에서 저림이 느껴진다.


이렇게 글이라도 쓰면 좀 나을까 싶어 끄적거리는 중이다.


르 클레지오의 조서가 생각나는 나날이다.

그 책을 다시 읽고 싶기도 하고 다시 읽고 싶지 않기도 하다. 내 마음을 모르겠다.


이번주엔 수요일에도 금요일에도 어쩌다보니 술을 마셨다.

정해진 술자리가 아니었고 어쩌다보니 술을 마셨다.


영화 헤어질결심에 대한 기대가 크다. 재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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