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tilda May 06. 2024

무제

5월 첫째주, 이틀째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는 아침부터 시작된 비가 하루종일 내렸고 내 방 창문을 열자 지하에 위치한 노래방에서 날 법한 쿰쿰한 냄새가 들어왔다. 


내 방은 이 집에서 가장 추운 냉방과도 같아서 며칠 전 전기장판을 주문했고 그걸 깔고나니 드디어 잠을 잘 수 있었다. 근래 들어 제대로 자본 일이 손에 꼽는다. 계속 새벽에 눈을 떴고 선잠을 잤다.

어제는 그런대로 잘 잔듯 하다. 꿈을 많이 꾸긴 했지만.


그러나 눈 떠보니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어제 남편이 차를 아주 심하게 긁어놓은터라 아침부터 그걸 다시 보니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모든 게 마음에 참 안든다.


개도, 집도, 남편도 모두 마음에 안 든다.


그나마 마음에 든 것은 1800원짜리 더벤티 아이스커피 뿐이다.


너무 화가 나고 마음에 드는게 없어서 서재에서 남편을 쫓아내고 개도 쫓아내고 홀로 앉아있다.

바깥에 내리는 비는 내가 어찌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미 긁어버린 차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화나게 하는 요소로부터 멀어지는 것 뿐이다.


모든 것이 더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다.

이런 때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불경도 소용 없고 집에 남은 한 모금 정도의 화이트 와인도 쓸모 없다.

죽을 수는 없으니 사는 인생인데, 이렇게 모든게 더럽게 느껴질 때는 아무래도 어쩔 수가 없다.


이틀 전에는 허리가 너무 아팠다. 한번도 허리 통증을 그렇게 심하게 느껴본 일이 없던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하루종일 허리가 아파서 누웠다가 일어나는 것, 옆으로 몸을 돌려 뉘이는 것 조차 힘들었다.

하다하다 이젠 멀쩡했던 몸까지 아작 나는구나 싶었다. 우스웠다. 하긴, 내 몸은 계속해서 늙고 있으니깐 당연한 일이겠구나. 


그 다음 날인 어제는 허리가 괜찮아졌으나 어깨와 팔이 너무나도 아팠다.

아마도 이 모든게 며칠 전에 무리하게 한 슬로우버피 때문인 듯 했다.

팔에 무게중심을 둘때마다 아팠으며 어깨에서 계속 통증이 느껴졌다.


어제는 할게 없어서 남편이 보고 싶다고 한 범죄도시4를 꾸역꾸역 봤다.

남편을 위해서라기 보단 하루종일 할 것 없이 집에 있기가 싫어서 갔던 것이다.

조조 할인을 받아도 2명에서 22000원이란 돈을 내고 그런 영화를 본다는게 새삼 병신같은 짓이다 싶었다.

욕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는게 뻔한 레파토리에 이제는 다음 장면에서 무슨 대사를 할지까지 훤히 내다볼 수 있는 그런 영화였기 때문이다. 자동 저능화 기능을 갖춘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부터는 밥먹는 것 제외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전기장판 위에 몸을 뉘이고 아픈 어깨와 팔의 통증을 간간히 느끼면서 아무것도 안 했다.

계속해서 무얼 먹기만 했다. 배고파서 먹은게 아니라 그 아무것도 안 하는 순간의 권태로움을 어떻게든 무언가로 채워보고자 먹었다.


그리고 오늘이다.

너무 지겹고 끔찍하다.


다른 소식에 대해서는 이 글에 남기지 않으려고 써두었던 두 문장을 지워버렸다.

결이 다른 그 내용을 굳이 이 글에 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좀 전에 갔던 역 근처 더 벤티에서 아침 10시부터 몰아치는 손님의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던 알바생이 인상적이었다. 이제 시작인듯했는데 힘들어보였다. 온라인 주문, 배달 주문, 바로 앞에서 직접 주문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아치고 있었다. 빨리 카페인을 섭취하기 위해 안달나 있던 사람들,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긋지긋한 비, 남편이 대차게 긁어놓은 내 차, 바뀐게 전혀 없는 복붙한 나날들.

1800원짜리 커피가 간절한 시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무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