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tilda May 09. 2024

무제

오늘은 혼자 산책을 갈까 고민을 많이했다.

아침에 만나자마자 계속 오줌을 싸대는 개를 데리고 가야만 하는가 짧은 순간 고민했다.

그렇지만 이 어두컴컴한 집에 홀로 남겨두긴 내가 충분히 매정하지 못해서 결국 데리고 다녀왔다.


공원에 설치된 운동기구 좀 해보려고 하면 자길 두고 어디 가냐고 컹컹 짖어대는 개다.

내가 가자는 방향으로 안가고 버팅기길래 줄을 놔버렸더니 쫄래쫄래 좇아온다.

내가 뛰어가면 본인도 뛰어서 나를 따라온다. 질긴 인연이다.


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나는 내 부모와 연락을 안한지 꽤 오래됐다.

그나마 연락하던 엄마도 작년 10월경부터 끊었다.

본인이 먼저 내가 늘어놓는 말들을 듣기 싫다고 거부했고 나는 모든 인연에 대해 그렇게 질척거리는 스타일이 아닌터라 그 제안을 수락했을뿐이다. 당연히 연락하지 않고 있다.


결혼하기 훨씬 전부터 엄마와의 관계는 매일매일이 지독한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 집을 벗어나고싶단 생각뿐이었다. 누군가의 눈엔 안락해보였겠지만 지독한 사이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벗어나서 결혼 후에 간간히 연락을 했지만 중간중간 연락을 끊어내는 텀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렇지만 또 다시 연락을 재개하기도 했고 그걸 반복하다보니 이번에도 엄마는 본인이 원하는 때에 내가 연락할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착각이다. 나는 더 이상은 연락을 하지도, 받지도 않을 예정이다.

며칠 전에 내 아이폰의 모든 기록이 다 날아갔다. 비밀번호를 여러번 틀려서 그렇게 된 것이다.

어제 저녁 8시에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였다.

아마도 안부 전화를 건 내 남편에게 나에 대해 서운하다 이야길 해놓은 터라 내가 받을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그 또한 착각이다. 본인이 낳은 자식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잘 모르는 사람이다.


엄마와의 관계는 어쩌면 내가 적극적으로 애를 가지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일것이다.

본인만의 요상한 기준에 맞추어서 나를 옭아맸고 같이 사는 기간 내내 부담스러웠고 힘들었던 관계다.

내 남편에게 나는 항상 말한다. 내 가족은 너랑 이 개랑 그리고 햄스터뿐이라고.


작년 10월에 나는 꽤나 힘들어했다. 당연히 회사로 힘들어했을 것이다.

그런데 본인이 듣기 싫다고 먼저 해놓고 이제와서 연락 안받는 나보고 서운하다고 하는 그 태도 자체가 몰상식하고 어린애 같달까. 나는 부처님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고 일개 인간이다. 더 이상은 어렵다.


아이폰 기록이 모두 사라져서 모든 차단이 해제된 듯 하다.

익숙한 번호를 다시 block 처리했다.


더 이상 덕지덕지 끊어진 관계를 이어붙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버려두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무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