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안느껴진다.
금요일 연차로 3일간 내리 쉬는데 20대 중후반엔 연차내고 집에 혼자 있으면 몰려오는 감정이 감당이 안 되서 불필요한 만남을 가졌던 기억이다.
종로, 이태원, 강남 등등.
서울 전역을 누리면서 돌아다녔다.
혼자 미술관도 자주 다녔다. 특히 20대 후반쯤?
27-28세부터 나는 더 이상 충분히 어린 나이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 당시 나는 7개월 정도 만난 남자에게 카톡 한통으로 헤어짐을 고했고 그 후로 찾아온 추석 연휴 내내 혼자 돌아다녔다.
외로웠던 것 같다. 그런데 사귀는 내내도 마찬가지였기에 결국 매한가지였다.
본가에서 아주 멀었던 송파에 있는 미술관까지 가서 전시회를 보고 혼자 돌아왔고 그때 처음 알게 된 황상민 박사의 팟캐스트를 들었다. 그때쯤은 이미 무의미한 사람과의 만남에 지쳤던 때였다. 그때부터였다.
혼자 있기. 외로워도 혼자 있기라는 어떤 하나의 명제가 내 삶에 생겨났달까.
인천 주안에 있는 예술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관에서 하루에 2개의 영화를 본날도 있었다.
하루 왠종일 영화만 본 것이다.
그게 아니면 집에서 부모님이 외출하시고나면 거실에 나와서 큰 티비로 선댄스채널에 나오는 미드나 영화를 봤다. 우리 아버지는 항상 너는 왜이렇게 특이한거만 골라보냐고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없을 때만 그런 걸 봤다. 그 후로 결혼을 하자 티비는 자연스레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결혼하면서 남편이 보던 티비는 그대로 가져왔지만 남편은 반강제적으로 티비를 못보게 되었고 나는 하던대로 티비를 트는 일이 없어졌다.
30대 초에는 코로나19로 락다운이 되면서 억지로라도 게임에 흥미를 붙여보려고 노력도 해봤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나는 게임에 미칠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정착한 곳은 영화와 술, 커피다.
나는 담배를 시도해봤지만 절대 그 이상한 것에 중독됄 수 없었다.
대신 술은 가능했다. 한동안은 그러니까, 31-33세부터는 와인에 맛들렸다.
이렇게 할 일없는 주말에 나는 혼자 한병을 낮부터 야금야금 마셔댔다.
지금은 돌고돌아 소주에 꽂혔다.
나는 예전부터 소주를 질색팔색했다.
그런데 우연히 알게된 소주 중에 새로 다래에 꽂혔다. 올해 여름은 다래덕택에 버틴달까.
RECTIFY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 글을 쓸 정도로 나는 이 드라마를 좋아한다.
볼 곳이 딱히 없어서 돈을 내고 다운받아 볼 정도였다.
그런데 티빙에서 그걸 하길래 요 근래에는 회사 점심시간에도보고 자기 전에도 틀고 지금처럼 할일 없는 주말에도 하루종일 틀어놓고 본다. 대사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새로 다래에 왜 꽂힌건지 잘 모르겠다.
죽었다깨나도 혼자 있을 때 소주 마시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다.
사람은 안 변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변하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이제 만으로 따져도 34세라는게 참, 낯설다.
다가오지 않는달까.
거리에 나가면 다들 살짝 영혼이 나간듯한 얼굴로 걸어다닌다.
우리 동네 골목은 일요일이면 쌓여있는 쓰레기봉투 더미로 가득하다.
그렇다 내가 사는 동네는 좋지 않은 곳이고, 곧 떠날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곧 떠날 것이다.
예전엔 왜 그렇게나 사랑에 얽매였을까?
그 남자가 내 인생의 단짝처럼 여겨진 일도 없었을텐데.
한 순간에 사랑에 빠졌었다.
지금은 내 옆에 남편 한 사람 뿐이다.
아무리 짜증을 내고 나를 귀찮아 해도 나를 안아주는 이 사람만 있으면 된달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술을 마실 수 있게 됐다.
예전엔 인생이 안 풀리고 사랑이 안 풀릴 때 마시는게 술이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 술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됐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