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by Minnesota

하루종일 하는 일 없이 앉아만 있어서 글을 써보겠다.

시킨일은 항상 재깍재깍 해버리고 만다. 그래야 귀찮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 5, 7월에는 성북구에 있는 아파트를 주로 보러다녔다.

성북구에 가고싶어서라기보단 1) 예산에 맞춰서 2) 회사랑 30분 거리라서 였을 뿐이다.

7월엔 우리 집 커다란 강아지랑 살기에 빡빡한 실평수 18평짜리를 덜컥 사려고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나는 조급증이 일년 내내 있었고 남편은 옆에서 조금만 더 참자, 좀 더 내릴 거다라고만 했다.


그 사이에 나는 이직을 해서 이제는 성북구랑 전혀 무관한 강남에 출퇴근 중이다.

강남은 안타깝게도 직주근접을 할수 없는 상황인지라, 우리는 1년간 더 가야만하는 내 학교의 위치를 고려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이번학기 종강하자마자 매입을 한 매물을 2주 전에 보러가게 된다.


애초에 상급지는 고려조차 할 형편이 못된 우리에게 이 매물은 한 줄기 빛이었다.

들어보니 매도자 부부는 작년부터 이 매물을 내놓았는데 원하는 금액으로 거래하자는 이가 없던 모양이다.

아마도 자녀 학군을 위해 작년엔 과천으로, 올해는 상도동으로 이사할 계획이란다.


내가 어제그저께 준 1000만원이란 약정금은 그들의 1월 해외여행 비용으로 쓰일테다.

17년도부터 모은 한화 연금보험을 깨서 준 돈이다.

그리고 1월말까지 내야하는 중도금은 17년도부터, 묘기증이라는 병까지 걸려가며 회사생활을 해서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둔 내 irp를 해지해서 처리할 예정이다.


두 번째 전세집은 종로였고 나는 이 집을 벗어나면 다시는 종로 근처에 올 생각이 없다.

수많은 이직을 했지만 내가 다니던 회사의 과반수 이상이 종로~시청~광화문이었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 나는 종로구와는 거의 완전한 이별을 할 참이다.


아쉽지도 않을만큼 이번 전세집에서 살면서 종로에 질려버렸다.

불친절하고 이상한 이웃, 더러운 골목길, 매번 막히는 도로.

그 외에도 수만가지 셀 수 없이 많은 사유가 산적해있다.


이제 가는 곳은 한적하다. 뒤에 산이 있다.

아쉽게도 천은 없다. 내 사주에 목이 많아서 물을 가까이하라고 하는데, 글쎄다.

지금 사는 이집은 바로 앞에 청계천이 흐르는데 별 효과 없었다.


우리는 실거주용으로 매입한 거라 특별히 집 값이 오르길 바라고 있진 않다.

다만 경기권으로 빠지지 않고 끝까지 서울에 집을 매입한 효과 정도는 있길 바라본다.

물론 우리가 말하는 경기권은 분당, 수지가 아닌 부천, 안양 정도 수준이지만 말이다.


올해는 어찌보면 되는 게 없던 해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작년 대비 1) 박사학위 과정 시작 2) 이직 횟수 줄음 이 정도의 실적은 있긴 하다만,

진정 원하는 건 이룰수가 없었다. 그냥 버텼다.


그래도 막판에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 12월 28일에 거래가 성사되어 내집 마련을 덜컥 했다는게 신기하긴 하다. 어떻게든 다음 집은 전세로 안 간다고 악을 쓰며 버텼던 나다.


대견하다기 보단, 그 설움을 알기에, 그래서 더더욱 실없이 남에게 이 이야기를 전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 하는 일 없는 이 시간에 글로나마 소회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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