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by Minnesota


이틀 전, 25년 12월 31일 오후 6시까지 4층 사무실에 남은 인원은 나 포함 3인이었다.

나는 IRP를 깨야만하는데, 전화상담 연결을 못해 결국 자진해서 칼바람을 맞으며 은행을 2번이나 왔다갔다했다. 해지하고싶은 데 전부매도 걸어둔 것이 걸려있어서 안된다고 한다. 추가서류를 다 챙겨가서 오늘도 해지하겠다했으나 안된다고 해서 결국 13일 오후반차를 내고 그날 해지할 예정이다.


내 돈을 돌려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와중에 나는 놀랍게도 내 집마련의 기쁨보다는, 너무나도 착잡하고 나 자신이 안쓰러운 절망감을 맛보고 있다. 1월 1일인 어제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인지 뭔지를 영화 국보를 본 이후로 오랜만에 마음먹고 영화관에서 봤다. 결과는 남편은 끝날때까지 졸았고 돈낸게 아까워 꾸역꾸역 보고나왔다.


더럽게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나와서, 하루종일 남편이랑 붙어 있었고 그러고나니 오늘은 남편에 대한 분노가 마구 치민다. 도대체 뭔 쇼츠를 3시간동안 보는가하고 봤더니 영화 축약 쇼츠인지 뭔지 계속 헐벗은 것들이 등장한다.


나는 그 사이 몸이 이상하게 아프기 시작했고 타이레놀을 먹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오후 4시까지 자던 남편은 일어나서 3시간 가량 내가 옆에서 아프던 말던 핸드폰만 쳐다보았고. 내가 회사 상사 얘기를 그 하루에만 최소 4-5번 이야기하는데 별다른 공감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버는 돈만 중요한거겠지.

그래서 나는 오늘 오전 내내, 점심 내내, 오후에도 여전히 남편에게 화가 치밀어올랐다.


저런 걸 남편이라고 이제 앞으로 평생 같이 대출금을 갚아야하는데, 믿을 수가 없겠다 싶다.

내 머리엔 집, 학교, 회사 밖에 없는데 남편은 그게 아닌것같다.

저런 저급한 사람이랑 내가 평생 20년 동안 돈이나 갚아나가면서 사는게 내 인생의 전부라는게 믿겨지지가 않는달까.


속에서 계속 분노가 치밀어서 점심에 간 절에서도 집중도 안됐다.

내 돈 IRP를 깨는 데 장장 4-5주가 걸리고, 그마저도 해지 후 바로 입금되는것도 아니라는데 나만 동동거린다. 남편은 아예 관심도 없다.


공동명의 집인데 왜 나만 이렇게 동동거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뭐 물론 집의 자금을 내가 계속 확보/관리한건 사실이다.

몸은 아프고 하루에도 10번, 20번씩 짜증나는 상사의 언행이 떠오른다.


그런 와중에 남편은 챗지피티 돌려놓고 내 사주를 운운하면서 올해도 힘들거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는 지 사주는 평생 안좋은 사주더만, 사주쟁이도 아닌 것이 어디서 저런 자신감이 나오나 싶다.


20대때 알던 지인이 신한은행 앱에서 봐주는 무료 사주가 잘 맞는다고 했을때부터 새해 되면 한번씩 들여다본다. 신한은행에서 내 올해 운세는 좋다고만 한다.

남편이란 사람이 내 편이 아니고 오직 이기적으로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언행을 보면서 굳이 저 사람과 20년 넘게 빚을 같이 갚아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끝까지 자기는 잘못한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데 어이가 없다.


역시 새해가 되면 모든게 완벽하게 아름다운 전환이 이뤄지는 것 따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날은 영하 16도에 육박하는데 내 기분은 그보다도 더 지하로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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