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퀘스트

by Minnesota

인생의 굵직한 스텝, 퀘스트는 어느정도 보편적으로 정해져 있다.

출생 이후의 삶은 이 스텝을 밟아나가는 궤도에 놓인 것이다.


20세 전까지의 퀘스트는 당연히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었고,

이후는 좋은 사람과의 결혼과 더불어 좋은 커리어를 쌓는 것이다.

그리고 추가하자면 그 과정에서 내 이름으로 된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있겠다.


나는 20대초반 연애 2번을 제외하고 항상 결혼이 하고 싶었다.

다행이도 소개팅은 끊이지 않았으나 당시 나의 에고는 토마스만의 마의 산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고 그러니 누구도 성에 차지 않았다. 남자들 대부분은 애프터 이후 사귀자고 하고, 내 더러운 성질머리를 3,4번 받아주다가 질려서 도망갔던 것 같다. 당시의 나를 떠올리면 그 누구도 나를 참아줄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29살이 되어 9개월이란 꽤나 긴 시간을 만난 남자친구마저 도망가버렸고,

그 이후 만난 남자가 남편이 되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여전히 내 옆에 있다.

물론 그 사이에 나는 마모가 되어 예전만큼 화를 자주, 많이 내진 않는다.


그래서 다시 퀘스트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결혼 이후의 퀘스트는 당연히 집 마련이다.

남편은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별다른 금전적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나와 결혼했다.

그러니 당연히 나에게 집 마련이란 퀘스트는 이룰 수 없는 무언가로 느껴졌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전세집 1곳에서 4년을 보내고 지금의 전세집에서 2년을 채워가는 원치 않는 경로에 놓인 것이다.


이 전세집에서 살면서 삶의 난이도가 갈수록 높아짐을 몸소 깨달았다.

매일이 위기였다. 그렇게 나 자체도 좀 더 질겨졌달까.

엥간해선 쉽게 풀리지 않는 일이 많아진터라 한번에 뭐가 안되면 역시나 하고 말아버리기 일수였다.

포기나 체념이라기보단 수용의 자세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모든 것을 빨리, 제 때에 진척시키고 싶어하는 나의 타고난 기질에 의하며 내 결혼은 이미 한참 늦어진 서른 살에 하게 된 것이고 집 마련은 까마득하게 많이 늦어지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싸울때마다 탓을 하며 언제까지 전세살이를 해야하냐 아득바득 승질을 냈던 것이다.


그 사이 내 커리어는 또 산산조각이 나다시피 했는데, 나는 싫던 좋던 이 전세집 이후에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싫어 죽겠더라도 회사는 끝까지 다녔던 것이다. 그렇게 2년간 5천만원 정도를 모았다.

그게 무슨 의미냐? 내 월급은 오롯이 적금통장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나는 주식, 코인을 안하기에 예적금 외에 투자랄것은 IRP빼곤 없었다. 순전히 예적금으로 2년간 그 돈을 모았단 이야기가 된다.


그 사이 또 나는 일을 저지르는데, 회사를 계속 다니려면 공부를 해야한다는 어불성설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고 또 내 남편은 그 말도안되는 말에 넘어가주었다. 그래서 25년도에는 박사과정을 시작하여 첫 학기는 남편의 퇴직금으로 두번째 학기는 친정에서 준 돈과 내 돈을 합쳐서 등록금을 냈다.


이러다보니, 내 집마련은 더욱 아득하게 느껴졌던게 사실이다.

커리어는 커리어대로 휘청거리고 매일이 벼랑 끝 같았으며 간신히 정신줄을 부여잡게 해준 것은 단 하나 공부였지만 그 마저도 지도교수님으로 인해 난이도가 최상이었다.


그런데 어찌저찌해서 1월 10일에 계약서를 썼고 1월 14일인 오늘 중도금까지 송금했다.

그 집은 애초에 15일까지 중도금 입금을 원했으나 우리 측에서 31일까지 주겠다고 하여 협의 완료된 상태인데 갑자기 14일에 중도금을 송금받아 계 탄 분위기일것이다. 나는 기분 좋고 후련한 마음에 여행 잘 다녀오시라는 나름의 인사치레까지 하였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더 이상 나에게 남은 퀘스트는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어제 면접본 대표님은 나에게 꽤나 직설적으로 말씀하셨다.

"박사까지 하는 것 보니, 꿈이 있어서 하는거 아니냐."


맞다고 했다. "그렇지만, 당장 내일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것이기에 만약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일이 더 좋다 판단하면 이 길로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라고 하니,


대표님 또한 내말에 적극 동의하셨다.


그래서 나는 나름 삶의 퀘스트를 깨부수면서 여기까지 왔다.

결혼하고 약 15~20킬로가 쪄버렸지만 인생의 중요한 퀘스트를 깨는게 다이어트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IRP도, 청약도 없다. 다 깨서 집에 넣어버렸다.

남편이 대출만 마련하면 그 집은 완전히 내 집이 된다.


이 이후의 삶이 어떻게 흐를지 나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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