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by Minnesota

기다렸다기보단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내던진 채 한동안 모르는 척을 했다.


작년 연말, 정확히 말하면 12월 초에 장장 3개월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쓴 논문의 투고 결과를 받게 되었다. 나는 한 해 동안 지도교수님을 괴롭히듯이 자주 찾아 뵈었고 매번 혼쭐을 나면서도 다시 문을 두드리고 마치 마조히스트인 양 또 연구실 의자에서 진땀을 빼면서 앉아 있었다. 입 한번 제대로 열어본 일 없이 10분이면 10분, 30분이면 30분 그렇게 교수님의 혹독한 가르침을 마주했다.


그렇게 해서 쓴 논문이었는데, 실망스런 결과를 마주한 이후부터 어쩌면 안에서부터 천천히 곪아가고 있던게 터져서 노란색 고름이 질질 흘러나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한달 간 나는 모두가 나를 외면하는 기분을 매일 느꼈다. 그렇게 고생해서 쓴 것이 거절당하고 고생해서 들어간 회사에서 또 방치를 당하고 요즘말로 세상이 억까하는 기분을 매일 같이 느꼈다.


그렇게 1월에 되었고 12월부터 시작된 불운은 여지없이 이어졌다.

단순히 운수가 나빠서, 내가 들삼재여서, 그 뿐일까.

원인은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봐도 나로서는 잘 모를 일이다.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선크림만 바르고 강아지와 나가서 걸었다.

별일은 없는데 유난히 집에 들어가자마자 노트북을 켜서 논문 진행 상태를 확인해야겠단 생각이 두세번 뇌리를 스친다. 회사를 나온 이후, 나는 마치 그 논문을 내가 썼던건지도 모를 정도로 그동안의 내 고군분투했던 모습을 모두 뒤로 한채 그야말로 막 살고 있다.


논문도 안 읽고 주제도 생각하지 않고 다시 논문을 쓸 생각조차 못하고 그렇게 모든 것을 뒤로 한채 상처입은 짐승처럼 골방에 틀어박혀 숨죽인채 살아가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깨끗이 씻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 채 노트북을 켜서 확인해보니,

어제는 공란이던 review time에 시간이 찍혀 있다. 상태는 심사완료, 심사위원장 최종결정중으로 바뀌어 있다.


그 사이 카톡이라곤 남편 외에 올일이 없던 내 카톡 방에 어젯밤 자정이 되기 4분 전 교수님이 보냈던 단톡방 메시지가 떠오른다. '좌고우면하지말고 각자의 속도로 연구에 집중하기 바란다.'는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좌고우면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찾아봐야겠다.


어제 밤 7시 55분 경에 바뀌어있는 논문 진행 상태는 과연 어떤 결과로 드러날 것일까.

작년 하반기에 피땀을 흘리면서 쓴 논문이다.

당시 10월 추석 연휴에 가려던 여행을 허망하게 못가게 된 후, 골방에서 갑자기 쓰기 시작한 논문이다.

그 외엔 그 때 당시에 대한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포기하려할 때 쯤 교수님은 무심한 듯 하나 진심 담긴 연락 한번씩을 하셨다.

내가 포기하려는 시점조차도 다 알고 계신 듯 했다.


그렇기에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재투고를 한게 12월 중순이다.

참 신기한게 나는 8월 1일 태생인데, 교수님은 8월 31일 태생이시다.

제일 더운 달의 처음과 끝.


올해는 교수님 생일도 챙기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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