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은 굉장히 까다로우시다. 그게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의 인정을 받고 눈에 들기 위해서는 어쩌면 더욱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착각일수도 있겠다. 내 경험에 국한해서 기술해보고자 한다.
박사 첫 학기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부딪히듯이 교수님을 만나뵜다.
교수님도 나를 모르고 나도 교수님을 모르는 무지한 상태말이다.
그렇게 첫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되자, 모든게 수포로 돌아간 상황을 마주하게 됐었다.
한 학기동안 연습삼아 논문을 써본 것은 당연히 그 상태로 보류되었고, 그 이유는 내 능력치가 미달됐기 때문이다.
2달 간의 여름을 지나 9월에 다시 시작한 2학기에 지도교수님은 수업을 하지 않으셨으나 항상 학교에 계셨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자주 찾아뵜었다. 어쩌다보니 교수님이 부담스러워하실 정도의 빈도수로 찾아뵜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부담스러운 박사과정 지도 학생을 굳이 다 받아줄 필요가 없음에도, 찾아온다고 하면 막지 않았던 지도교수님께 무한한 감사함과 죄송스러움을 함께 느끼고 있다.
얘는 왜 준비도 안된 상태로 자꾸 나를 찾아오지? 하셨을 것 같다.
얘는 왜 실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로 나를 찾아와서 앉아있을까. 싶으셨을 것이다.
나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를 가르쳐본 경험은 대학 입학 후 과외 알바 할때, 20대 후반에 잠깐 영어 학원에서 강의했던 것 빼곤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그 분에게 비춰진걸까.
오늘 처음으로 학위논문 주제에 대해 흥미롭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 고민해야하는 부분은 존재한다.
나는 더 이상 성급하게 움직일 생각이 없다. 1년간의 가르침을 통해 얻은 사실이 있다면 교수님이 짚고 넘어가라 하신 부분을 흐린 눈을 하고 넘겨버리면 내가 잃게될게 훨씬 많아진다는 것이다.
초반에 그 분과 소통하면서 나는 참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그분은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는데, 나는 계속해서 왜 나를 받아주지않냐고 한 것인데 어찌보면 세살배기가 하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혼자서 기대하고 혼자서 상처받고를 반복한게 대략 5-6개월이었고, 그렇다고 그 후가 편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작년 하반기에는 교수님만 뵙고 오면 울었던 것 같다. 그 분앞에선 간신히 참고 돌아나와서 남편앞에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
지금은 일방향의 관계는 아닌 듯 하다. 어쩌면 그분도 살짝은 마음을 연 것일지도 모른다.
삼십 중반의 나는 이제 꿈꿀만한게 별로 없다. 이미 아름다운 연애도 해봤고 가슴 아픈 이별도 수차례 해봤다.
내가 꿈꿀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협소해진지 오래인데, 그 중 하나가 그분의 마음을 얻고 인정을 얻고자 하는 것인데 이를 입 밖에 내기조차 힘들 정도로 간절히 원했다. 진짜 원하는 일은 함부로 말조차도 안나온다는 사실을 이때 깨닫게 됐다.
너는 왜 그렇게 그 사람에게 매달리니?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그 분이 알게된다면 아마 너무너무너무 부담스러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유일하게 남은 희망의 동앗줄이다.
그래서 이 줄을 놓치거나 이 줄이 끊어지면 내 인생에 희망이 남아있지 않을 것 같달까.
그 정도의 상태다. 이런 마음을 들키지 않아야할텐데 이 부분도 걱정이다.
살면서 어느 누구에게 이 정도로 인정을 갈구해본일은 없던 것 같다.
학부때는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아도 교수님들의 눈에 곧잘 들었던 것 같다. 과제를 잘 했고 시험을 잘 봤고 발표를 잘 했으니까. 그때는 오만방자했고 그런 애티튜드를 굳이 숨길 필요도 없던 햇병아리였다.
이번 만큼은 삐끗하고 싶지 않아서 이 악물고 버텨내면서 온 관계인데,
끝까지 잘 이어질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