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15000보 가량 걸었다. 2년째 살고 있는 동네지만 남편과 걸어서 10분거리의 카페를 처음 찾았다.
가보니 작은 공간에 이미 사람이 한가득이었고 테이블이 없었으나 너도나도 양보를 해주어서 근래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꼈다. 주문이 밀렸는지 꽤나 기다린 후, 테이블에 놓여져 있던 보들레르의 시집을 훑어보던 차에 드디어 주문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과테말라를 마시려 했는데 없어서 르완다 드립커피를 주문해보았다.
또 꽤나 기다린 후에야 오후 커피를 한잔 더 마실 수 있었고 창가를 바라보는 자리였기에 나는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원체 말이 많은 유형이 아닌지라, 카페에 간다고 해서 달라지는게 없었다. 그렇게 웅성웅성대던 할아버지 무리들은 어느새 금방 자리를 떴고 단골손님으로 보이는 남자 손님도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한지 얼마안되서 자신의 갈 길을 떠났다. 그들이 떠난 빈자리를 볼 수는 없었다. 등지고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본래라면 이렇게 바글바글하고 시끄러운 공간을 질색하는 나인데, 그 카페의 특유의 따뜻함이 좋았다.
그래서 그곳에서 우리 기준으로 꽤나 오래 머물렀고 다시 길을 나서서 영화관에 갔다.
언제나처럼 카라멜 팝콘과 음료를 들고 영화관에 가서 앉았다.
오랜만에 한국 사극 영화였는데 내 기대에는 못 미쳤다. 한국식 특유의 신파극이 너무 자주 등장했고 나는 꽤나 울보인데도 불구하고 쥐어짜는 눈물에 대해서는 질색하는 편이다. 그런대로 보기는 했지만 결코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단종에 대해서, 한명회에 대해서 생각한다.
평소 나는 영조와 사도세자에 대해서는 자주 생각했으나 단종과 한명회의 관계는 잘 몰랐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관점에서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가 향유자의 구미를 좀 더 당기는건 사실이라 생각한다.
어찌저찌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7시반이었고 남편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었다.
하루를 알차게 보냈고 당연히 꿀잠을 잤으나 아침에 눈 떠서 일요일임을 지각했을 때 나는 슬퍼졌다.
다음 날인 월요일에 나는 또 이 고요한 집에 덩그라니 남겨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집 문제, 그러니까 약정금, 계약금, 중도금을 순차적으로 치뤄서 산 내 집에 대해 한 번의 고비를 더 겪어야 한다. 그것은 대출 문제인데 돈이 살짝 모자른 상황이고 나는 이미 내가 17년도부터 벌었던 돈을 다 털어서 위에 명시한 금액을 지불했기에 대출은 사실상 남편의 몫이다.
부부가 운영하는 따뜻한 카페와 단종의 죽음을 그린 영화는 나에게 그런대로 만족감을 선사했지만 누군가가 이야기했듯이, 잔치는 결국 끝나기마련이다.
현실의 나는 혼자 남겨질 월요일에 대한 두려움과 불현듯 찾아오는 트라우마 조각에 부지런을 떨며 아침 식사를 만들었고 빨래를 갰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혼자만의 방에서 쓰는 중이다.
의지하고 싶어서 결혼한게 맞지만 남편 없이는 거의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되어 버린 것에 가끔 놀랄 때가 있다. 결혼 전까진 부모님에게 그렇게 의지했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시험을 치고 수업을 듣고 다시 또 글을 쓰고 이런 것에만 능숙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만하면서 살아갈 수 없었기에 트라우마에 트라우마를 얹어가면서 하기 싫은 일을 했던 것 같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아침 식사는 마치 호텔의 조식처럼 스크램블 에그에, 버터를 녹여 구운 토스트와 사과였다.
자주 가던 저가 커피 브랜드의 커피 맛은 새해들어 한층 역해졌다. 커피 향은 커녕 시커먼 사약의 모습을 하고 있고 입에 넣는 순간 쓰디쓴 맛만 입안 한 가득을 채워서 기분까지 역해진달까.
오늘 나는 무얼해야할까.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가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