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쩐지 지난 이틀과는 달리 책이 읽히지가 않는다.
머리속엔 출력하고자 하는 문장이 자꾸 차오를 뿐 남이 쓴 문장이 읽히지가 않는다.
남편에게 매우 의존적인 나는 남편과 단 이틀만 함께 할 수 있어서 주말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래서 남편에게 빨리 하라고 보채는 중인데,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은행 업무, 컴퓨터로 해야하는 업무, 인증서를 거쳐야 하는 업무를 할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아 오르는 듯한 분노를 자주 느낀다. 바로 방금 전까지 배우자 동의를 얻어야 하는 지점에서 나는 5번이나 똑같은 절차를 거쳐 나 자신을 인증해야했고 증명해야 했다.
나는 매일하는 모든 쓸모없는 행위에 대해 진절머리가 난다.
이를테면 머리를 감고 말리는 과정이 1순위다. 그래서 종종 나는 물에 푹 젖은 머리를 그대로, 납둔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그대로 마를테니까. 대신에 이렇게 방치할 경우 나처럼 곱슬을 인위적으로 핀 머리에는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내 화장대에 놓여있는 똑같은 화장품에 질린다. 아무리 푹푹 찍어발라도 이놈의 싸구려 화장품은 좀처럼 닳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다. 오늘은 공병을 볼 수 있을까? 하면서 화장대 의자에 앉아보지만 아직도 2-3주는 족히 쓸 정도의 양이 남아 있는 토너와 크림 튜브를 바라보면서 무력함을 한 층 더 깊이 느낀다.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내 집이란 공간을 마련하는게 이렇게나 힘든 일인지,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하면 할 수록 다시는 못하겠다 싶을 정도로 사람을 움츠리게 만드는 과정이다.
매번 그랬다. 나는 쉽게 싫증을 내는 사람인데, 벌써 수십년 째 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유기견 센터에서 강아지를 데려왔을 때 잠깐 다른 방에 다녀오면 거실 바닥에 오줌을 지리거나 배변 패드에 똥을 싸는 개에 대해 싫증을 낼까봐 두려웠다. 신혼 기간 동안 열심히 싸우면서 나는 평생 살지 않으면 이혼해야 하는 결혼에 대해 싫증을 낼까봐 두려웠다. 그리고 실제로 남편에게 지겹다는 말을 잊을만하면 하고, 또 하고를 반복했고 상대도 자주 그런말을 보복성으로 내뱉을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죽으라는 법은 없는건지, 매일 머리를 말리는 행위와 화장대에 늘어져 있는 싸구려 화장품에는 역겨움을 느끼지만 내 강아지와 남편, 그리고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싫증보다는 감사함을 느낀다.
웃기지만 나 자신에게도 고맙다. 결혼생활과 유기견 센터에서 데려온 강아지에게조차 싫증을 내버릴까봐 노심초사했기 때문이다.
더욱 솔직하게 말하자면 죽을 때까지 살아내야 하는 이 삶 자체에 대해 환멸을 느낀지는 아주 오래됐다.
우울증이라기보다는 내 본성에 기인한 회의주의적인 마인드로 인한 감정일 것이다.
왜 이렇게 반복적으로 똑같은 짓거리를 해야하는지 생각하면서 20대를 허비하였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조차 힘이 들어서 포기한지 오래다.
머리 말리는게 그렇게 귀찮으면 하루 정도는 안 감아도 되는게 아닌가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또 특히나 냄새에 민감하다. 조금만 땀이 나고 조금만 찐득거리는게 느껴지면 불쾌해지고 나 자신에 대해 불쾌해지는 것은 타인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일보다 그 고통이 배가 된다.
그래서 결국은 꾸역꾸역 그 지긋지긋한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20대 중후반에 남자를 만나는 일 또한 나에게 머리를 말리는 과정과 동일한 부정적인 감정을 안겨주었다.
그들을 만나려면 우선은 씻는 것은 기본이고 화장을 해야하고 가끔은 미용실에 가서 드라이를 해야했으며 웃어주어야 하고 들어주어야 하고 공감해주어야 했고 적당한 순간에 귀여운 짓도 해야 했다.
지금은 그 모든일로부터 해방이 되었고 다행이도 하나의 쓸모없는 행위는 결혼을 통해 인생에서 삭제됐다.
매일 반복하는 쓸모없는 행위는 결국 내 인생 전체를 채운다.
죽지 않으면 계속해나가야 하는 이 행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