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by Minnesota

어제는 하루 종일 아비규환의 상태였다.

아비규환의 정확한 정의는 '그 끔찍함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전쟁통도 아닌데 어째서?

어제는 날씨가 유난히 안 좋았고 꾸역꾸역 산책을 나갔으나 30분도 채 못 지나 집에 돌아왔다.

나는 비가 오기 전 단계가 되면 유난히 불안하고 기분이 급격히 저조해지는 사람이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는 도서관에 가려다가 말아버렸고 방에 주저앉아 있었다.

알라딘으로 시켰던 책 두권과 에티오피아 원두는 아직 도착 전이었고 나는 하는 일이 없었으며 속은 썩어 들어갔던 것 같다. 결국 배도 별로 안 고픈데 점심은 살겠다고 챙겨먹고는 마음의 결심을 내렸다.


그것은 바로 전 국민이 다이어트를 위해 맞고 있는 마운자로.

이미 아주 예전부터 마운자로의 후기를 찾아봤고 부작용에 대해서도 여럿 찾아 읽었다.

그렇지만 마음의 준비가 잘 안 되다가, 단약을 해도 바로 요요가 안 온다는 몇 명의 이야기에 용기를 냈다.

당연히 남편은 반대였다. 남편은 내가 하고싶다고 하는 모든 말에 반대부터 한다.

1. 놀이공원을 가고 싶다. -> 안돼.

2. 미국을 가고 싶다. -> 안돼.

3. 마운자로로 살 빼겠다. -> 안돼.


처음에 남편의 반대가 경제적 이유 때문일까라고 생각했는데 그저 NO를 외치길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래서 싫다. 나는 20대초만 해도 놀이공원을 좋아했고 친구들과 같은 롤러코스터를 3번은 타는 그런 사람이었고, 미국에 갔을 때 5개월동안 라스베가스, 플로리다, 시카고, LA, 동부(뉴욕, 워싱턴, 보스턴) 다 찍고 온 사람이었다. 마지막 3번. 결혼하고 1번은 살을 빼서 결국 바디프로필까지 찍었던 사람이다.


그랬던 내가 24년도부터 남편의 지속적인 NO와 나이듦에 따라 줄어드는 의욕 등으로 인해 이렇게 변한 것이다.


하여간 나는 어둑한 날씨에도 병원까지 25분 정도 걸어갔고 그 곳에는 사람이 한 가득이었다.

내가 사는 이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마운자로 성지라 불리는 병원이 있었고 기계처럼 처방전을 찍어주는 곳이란다. 나는 그것도 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공장처럼 찍어주는 처방전을 받아들고 약국을 2군데나 들렸는데 품절이어서 예약을 걸어야한다고 했고 나는 몰랐으나 약사가 알려준 방식으로 10% 할인 받는 온누리라는 방식으로 돈을 지불하고 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냥 무작정 한번 가봤던 텐퍼센트 커피에 들렸다.

안마셔본 메뉴를 택했고 꽤 오래 앉아있었다. 그렇게 오래 앉아있었던 이유는 사실 단 하나다.

내 바로 옆 자리 여자가 꽤나 가깝게 붙어 앉아있었고 나는 매우 불편했기에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으나 여러번 큰 결심을 반복한 이후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비를 맞았다. 원래도 우산 쓰기를 싫어하고 부슬비 정도는 맞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나 어제처럼 유달리 소득 없이 힘이 드는 하루는 비 맞기도 영 별로였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녹초가 되어 누워있다가 남편이 왔고 남편과 3시간 가량 다투었다.

대치상태였고 강아지는 저 멀리서 싸우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얼떨결에 수개월 동안 말하지 않고 살던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고 그 사이 밀려 있던 이야기(주로 집 매매 관련)를 했다.


나는 남편이 사왔던 맥주를 얼떨결에 마셔버렸고 결국 잠은 거의 못자고 일어났다.

몸은 온통 쑤셨고 강아지 또한 우리의 싸우는 모습에 지친건지 늘어져 있다.

하는 수 없이 눈 뜨자마자 타이레놀을 먹었고 묘기증 약도 털어넣었다.

오늘은 또 어떻게 지내야할까 하던 차에 집에 도착한 알라딘 상자 2개를 발견했다.


에티오피아 원두에선 신기하게 정말 군고구마의 향기가 났고 드립커피를 마시고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리고 중고책 1권, 신간 1권을 갖고 노트북과 함께 방에 들어와 이 글을 쓴다.


엄마는 거의 10년 넘게 신년 운세를 보러 가는 철학원에 이미 다녀왔다고 한다.

보통 가서는 가족 전체 것을 보고 오는 편인데,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엄마 말로는 철학원 아저씨가 말하길, 나는 올해 특히나 운이 좋다고 했단다. 물론 나는 그 사이 퇴사를 했단 이야긴 엄마에게 하지 않았다.

그러냐고 했다. 뭐 안좋다는 것보단 좋다고 하는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문서운이 들어왔고 집은 서울, 인천(또는 경기) 중 한 곳으로 사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는데 나는 이미 서울에 집을 샀으니 뭐 그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이 밀려있던 이야긴 많았지만 나는 회사와 학교 이야긴 거의 안하고 넘겨버렸다.

대신 곧 입주할 집의 인테리어, 집, 그리고 연말연초에 그 집에 들어갈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내가 6번이나 은행에 갔던 일에 대해 토로했다. 그런 잡다한 이야기만 하다가 통화를 끊었더니 대략 9시였다.


어제는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날 봐왔던 영어학원 원장선생님(내 유일한 멘토)에게 연락을 했다.

1월 초 퇴사를 하고 여러가지로 자신감이 없어져서, 이 상태로 학교를 가야할지 고민된다고 말씀드렸다. 휴학을 하는게 맞을지 여쭤봤더니 선생님은 본인 또한 그와 유사한 상태라고 하시면서 조언을 바로 주셨다.


감사했다. 난 진지하게 여전히 휴학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뒤쳐지긴 싫지만 이 상태로 가서 내가 자신감있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지를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 학기 교수님 2분은 내가 좋아하는 교수님이라는 점에서, 휴학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곧 있으면 다음 학기 수강신청이며 학자금대출 신청해 둔 것의 '실행'을 눌러야만한다.


제일 첫 문장으로 돌아가서 이 모든 상태가 아비규환과 같다.

내 현실, 내 마음 모든 것이 아비규환의 상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도